ALONE, 줌파 라히리 외 21명, 혜다, 2023(1판 2쇄)
우리 부부는 어쩌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된 무기력한 육체에 지나지 않았다.
책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어린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낳고 기르는 동안 나와 매일 함께 지냈지만 그럼에도 나를 낯선 미국 아이처럼 느낀다는 사실 또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존재로 가득 채워져야 할 그곳엔 슬픔만이 가득했다. 만일 글을 쓰는 작업이 부당함에 대한 반발이라면 혹은 빼앗긴 삶의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행동이라면, 이 일이야말로 내가 그런 감정들을 느꼈던 첫 번째 경험이었다.
작가는 보고 듣는 직업이지만 정작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귀를 막고 눈을 가려야 한다.
목격하라, 내가 사는 미시시피주가 2013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는 수정 헌법 13조를 비준했다는 사실을.
주방에 서서 냄비를 휘젓고 있는 내 모습이 왜 그렇게 절망스럽게 느껴졌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스스로를 위해 더 많은 것들을 상상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러 나 자신을 불행한 운명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이야말로 외로움이 지닌 가장 억압적인 특징이다. 상상력을 제한하고, 삶은 결코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 속삭이며,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꿈꾸지 못하게 스스로를 얽매는 것. 외로움은 그렇게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그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된 후부터 나는 그의 침실에 달린 조명처럼 굴었다. 그는 수도승처럼 엄격한 취침 습관을 지닌 사람이어서 나는 대부분의 밤을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면서 보내야 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슬픔을 달래려고 잠이 불러오는 무감각적인 효과에 기댄 적이 없다.
나에 관한 또 다른 이미지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빙글빙글 나사를 조이는 것처럼 한 번 돌릴 때마다 서서히 저 아래로 멀어지는 모습이었다.
혼자 사는 일 중 하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을 때 술병의 개수를 헤아리며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저걸 다 마셨다고?
학교가 끝난 후 매일 어딜 가는 거냐고 오빠가 물었을 때도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나는 자신을 멜론처럼 조각조각 잘라서, 그 누구도 나의 온전한 형태를 아랑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나는 백인 어른들이 마치 나를 영화나 그들 삶 속의 조연으로 치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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