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미야구치 코지, 인플루엔셜, 2023(초판 4쇄)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유소년기의 조서를 읽어보면, 어떻게 이 정도일까 싶을 정도로 소년원에 들어오기까지 비행을 반복했다. 소년원에 갓 부임했을 때는 흉포한 녀석들만 있어서 갑자기 폭행당하는 건 아닌지 싶어 늘 조심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붙임성도 있고, 어째서 이런 아이가 여기 있을까 싶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충격적인 것은 다음과 같은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 간단한 덧셈 뺄셈을 못한다.

* 한자를 읽지 못한다

* 간단한 도형을 따라 그리지 못한다.

* 짧은 문장조차 따라 외우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힘도 매우 중요한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시간 개념’이다. 시간 개념이 약한 아이는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사흘 정도의 시간에 걸쳐 일상생활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 분 후의 일조차 관리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우리는 ‘자 가수의 콘서트에 가고 싶어’ ‘오랜만에 친구를 좀 만나고 싶은데’라는 기분이 생길 때 비로소 행동으로 옮겨 콘서트에 가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 ‘00하고 싶어’라는 기분이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조건 반사를 제외하면, 감정이 인간의 행동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00하고 싶다’라는 부분에서 빈칸에 ‘도둑질’ ‘희롱’ 같은 부적절한 말이 들어갈 때다.

 

 

 현대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IQ가 70 미만일 때 지적 장애’라는 기준은 1970년대에 정해진 것이다. 1950년대에 일시적으로 ‘IQ 85 미만을’ 지적 장애로 한다’고 정의한 적이 있다. 현재 IQ 70~84는 ‘경계선 지능’으로 불린다. IQ 85 미만을 지적 장애 기준으로 삼으면 전체 인구의 16퍼센트 정도가 지적 장애로 판정된다.

 

 

 학대하는 부모들은 대개 이러한 특성을 보인다. 고지식해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상담하지 못한다. 고립되어 있다. 인간관계가 서투르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등. 무언가 깨달음이 오지 않는가? 바로 경도 지적 장애나 경계선 지능에 있는 사람들과 무척 비슷하다.

 

 

 상담 사례로 올라오는 아이들은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인간관계도 서툴러서 칭찬할 만한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잘하는 부분을 찾겠다고 하다 보면 보통 사회에서라면 칭찬받을 만한 게 아닌 것을 칭찬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정말로 문제가 해결될까? 아마도 처음에는 아이도 칭찬을 받아서 기뻐하고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금세 원래대로 돌아가버리는 일이 많다.

 소년원의 아이들 중에서도 교관 선생에게 주의와 지도를 받으면 “나는 칭찬받으면 발전하는 타입이에요”라고 울면서 항변하는 소년이 있다. 분명 부모에게 그런 말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란 결과가 소년원 입소인 것이다.

 칭찬과 더불어 자주 나오는 방안이 ‘이야기 들어주기’다. 이것도 아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안정시키는 데 효과는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칭찬하기, 이야기 들어주기는 그 자리를 모면하기는 좋을 뿐 길게 보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아이의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룰 뿐이다.

 

 

 

 아이에 대한 지원은 학습적인 면(인지 기능 등), 신체적인 면(운동 능력 등), 사회적인 면(인간관계 등) 등 크게 세 사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보호자에 대한 지원도 있긴 하지만 아이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이 세 가지로 이뤄진다.

 나는 강연을 할 때 그 자리에 있는 교사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여러분이 이 세 가지 중 최종적으로 아이들이 익히기를 바라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원은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교사들이 ‘사회적인 면’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나는 이어서 질문한다.

 “그렇다면 선생님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면의 지원으로 학교에서는 지금 어떤 지도를 체계적으로 하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교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라고 답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초등학교라면 국어, 수학, 과학, 사회 같은 교과목 수업 시간표가 촘촘하게 짜여 있다. 그중 일주일에 겨우 한두 시간 정도 도덕 시간이 있다. 그렇다면 도덕 시간에 사회적인 면의 지도를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즉 지금 학교 교육에서는 체계적으로 갖춰진 사회적인 면의 교육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사회적인 면의 지원이란 인간관계, 감정 조절, 사회 예절, 문제 해결력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사회생활을 잘 해나갈 수가 없을 것이다.

 

 

 사회적인 면의 지원이 이렇게 중요한데도 체계를 갖춘 학교 교육이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각성제 사용이나 상해, 살인 사건 등은 애초에 그런 행위 자체가 범죄에 해당하지만 성행위 자체는 그렇지 않다. 강간 사건에는 상대의 동의 여부 같은 당사자 간의 관계성이 범죄 성립의 요건이 되지만 성행위 자체로는 범죄 행위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것을 성범죄를 저지른 아이에게 충분히 이해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 삿포로에서는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에 지하철 승강장에 거울을 설치했더니 자살 시도가 줄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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