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문학동네, 2023(1판 10쇄)
시간은 지속적인 가려움이 되었다.
벤저민은 돈의 뒤틀림에 매료됐다 – 돈을 뒤틀면, 돈이 자기 꼬리를 억지로 먹도록 만들 수 있었다. 투기의 고립되고도 자족적인 성질은 그의 성격과 잘 맞았고, 경이감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목표였다. 벌어들인 돈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또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았다면, 벤저민은 금융계에 끌린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를 어려워했을 것이다. 금융계의 복잡성이 한 가지 이유였던 건 사실이지만, 그 밖에도 벤저민에게 자본은 균 하나 없는 생물로 보였다는 이유도 있었다. 자본은 움직이고 먹고 자라고 새끼를 치고 병들며 죽을 수도 있지만, 깨끗하다.
저택이 완공되자 벤저민은 무도회를 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은 그러지 못했다 – 비서와 함께 손님 명단을 살펴보던 중 사회적 노력이란 들이면 들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는 존재라는 걸 이해하자마자 이런 시도를 포기했다.
미묘하게 깨끗하지 않은 창문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빛 때문에 공기에 분필 가루를 풀어놓은 것만 같은 그 가게에서는 기이한 우유부단함이 느껴졌다.
브레보트 부인은 공적인 일이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을 개인적 모욕으로 보았다. 그녀는 자동차 보닛에 들어 있는 엔진이나 증기선 갑판 및 기관실에 대해 무관심하듯 사회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행정적, 경제적, 외교적 복잡성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각자가 승리에 있어서는 적극적 주체이지만 실패에 있어서는 수동적 개체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녀의 독서회에 참석하고 콘서트를 열던 사람 중 진정한 의미에서 친구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함께, 한 집단으로서 그녀의 인생에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외로움에 대한 취향을 잃었다.
우리는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 어떤 형태의 수익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이 전부 소진될 때까지 일 초씩, 십 년씩 지출하는 것뿐이다.
그레이스는 에드워드의 새로운 삶을 완성했다. 부부는 몇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뉴욕 사교계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뉴욕을 싣고 라 피에솔라나로 갔다.
평생 온갖 소문이 나를 휘감고 있었네. 나는 그런 소문에 점점 익숙해졌고, 뒷말이나 전해지는 이야기를 굳이 부정하지도 않아. 부정은 언제나 긍정의 한 형태니까.
정해진 형태가 없는 미래라는 블록으로부터 현재를 조각해낸다.
내 일은 정답을 맞히는 거야. 언제나. 조금이라도 틀리면, 나는 모든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서 내 실수가 더 이상 실수가 아니게 되도록 하네. 현실을 조정해서 내 실수에 맞도록 구부리지.
예컨대 나는 아버지에게 시간을 다르게 경험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타자로 치는 단어는 늘 과거에 있는 반면, 내가 생각하는 단어는 늘 미래에 있었다. 그러므로 현재는 이상하게도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오늘날 불황에 대해서 가장 시끄럽게 불평하는 자들은 애초에 그 불황을 일으킨 자들이네. 그 모든 자기중심적 개인들이 언론에 나와 불공정 행위가 있었다고 소리를 질러대지…… 빚을 내서 룰렛을 돌리던 그 모든 옹졸한 투기꾼들이 갑자기 정의와 공정의 수호자가 된 거야……
‘부’란 화강함 덩어리라기보다 수많은 지류와 갈래가 있는 강 유역에 가깝다. 쌓여만 가는 권리 주장과 관련자, 채권자, 투자자들의 소송으로 베벨의 재산은 동결됐다.
체온과 같은 온도의 온천에는 뭔가 역겨운 점이 있다. 다른 사람이 목욕한 물에 들어가는 것 같다.
그 시절에, 나는 그게 우리 결혼생활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가 정말로 결혼생활이 시작된 때라는 걸 알았다. 맹세를 한 상대보다는 맹세 자체에 더 헌신하게 될 때가 진정한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내 입 속 딸기는 살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태어나지 않은 것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딸기의 살점은 이미 죽은 것일까?
신은 가장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가장 흥미롭지 않은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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