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에드 용, 어크로스, 2023(초판 9쇄)

 

 

 

 우리는 모두 일종의 동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너 나 할 것 없이 누구나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풍부한 미생물 군집을 하나씩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추정치에 의하면 우리는 약 30조 개의 인간 세포와 39조 마리의 미생물을 갖고 있다고 한다. 즉 인간 세포 수와 미생물의 개체 수는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맨 처음 인간의 마이크로바이옴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할 때, 미생물학자들은 하나의 핵심 마이크로바이옴core microbiome이 발견되기를 바랐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미생물 그룹이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핵심 미생물종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오른손이 왼손과 공유하는 미생물종은 2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아기는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무균실을 나와 곧바로 미생물이 우글거리는 질을 통과한다. 신생아의 마이크로바이옴 중 약 4분의 3은 어머니에게서 직접 유래한다. 부모와 환경으로부터 새로운 미생물종을 받아들임에 따라 아기의 장내 미생물 구성은 점점 더 다양해진다.

 

 

 과학자들은 이제 우리의 면역계를 맨 처음 형성하고 조율해 주는 은인으로 미생물을 꼽는다.

 

 

 매즈매니언은 PSA를 공생 인자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미생물이 사용하는 일종의 화학적 메시지로서 숙주에게 이런 뜻을 전달한다고 한다. “나는 싸우기 위해 온 게 아니라, 화친을 맺기 위해 왔노라.” 이는 무해한 공생 세균과 위협적인 병원균을 구분하는 것이 면역계 본연의 임무가 아님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구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면역계가 아니라 미생물이다.

 

 

 우리의 일생에서 순찰 팀의 활동이 뜸할 때는 단 한 번, 삶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데, 미생물학자들은 이때를 ‘빈 서판blank slate 시기’라고 부른다. 최초의 미생물들이 신생아의 몸속에 정착하도록 허용하기 위해, 특수 임무를 지닌 면역 세포들이 등장하여 면역계 전체를 침묵시킨다. 생후 5개월 미만의 아기들이 감염에 취약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 시기의 유아들이 감염에 취약한 것은 면역계가 미숙해서가 아니라 고의로 침묵하기 때문이다. 면역계는 미생물들에게 자유 통행권을 발급한 다음, 그들이 전신에 정착할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것이다.

 

 

 당시 연구실에 머물던 대학원생 턴보는 살찐 생쥐와 날씬한 생쥐로부터 미생물을 수확한 다음 두 그룹의 무균생쥐에게 각각 투입했다. 그 결과 뚱뚱한 생쥐의 미생물을 받은 무균생쥐는 체지방이 27퍼센트 증가했고, 날씬한 생쥐의 미생물을 주입받은 무균생쥐는 체지방이 47퍼센트 감소했다.

 

 

 인체의 면역계는 매우 복잡하지만 기본 원리는 온도 조절 장치와 매우 흡사하다. 말하자면 온도 대신 면역을 취급하는 면역 조절 장치로서, 우리와 미생물 간의 관계를 안정화시킨다. 즉, 얌전한 수조 마리의 미생물을 잘 관리하는 한편 병원성이 있는 사나운 소수의 침입을 막는 것이다. 만약 설정치가 너무 낮으면 감시를 소홀히 하여 위협을 간과함으로써 우리를 감염에 노출시키고, 설정치가 너무 높으면 신경이 예민해져 얌전한 미생물을 불필요하게 공격함으로써 만성 염증을 일으킨다. 면역계는 양극단 사이에 섬세한 선을 그어, 염증을 유도하는 세포 및 분자와 염증을 억제하는 세포 및 분자 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빈세기 동안 우리는 위생과 항생제와 현대 식단을 결합하여 면역 조절 장치의 설정치를 계속 상향 조정해왔고, 그리하여 우리의 면역계는 무해한 물질(먼지, 식품 속 분자, 체내에 상주하는 미생물, 심지어 우리 자신의 세포)만 봐도 흥분하여 길길이 날뛰게 되었다.

 

 

 항생제는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는 무기다. 특히 광범위 항생제는 ‘원하는 미생물’과 ‘원치 않는 미생물’을 부차별적으로 살상하는데, 이는 생쥐 한 마리를 처치하려고 도시 전체를 핵무기로 공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쥐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도 않고서 말이다. 많은 의사들이 바이러스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항생제를 처방하지만,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항생제란 없다. 

 

 

 풍요롭고 번성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침습적 병원균에 대항하는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상기하라. 아이러니하게도 항생제 사용에 수반되는 마이크로바이옴 손상은 더 많은 질병에게 침입로를 열어줄 수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구성하는 ‘오랜 친구들’이 사라지면 장벽도 무너지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위험한 세균들이 침입하여 친구들이 남긴 공터와 식량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농부들은 가축들에게 저용량 항생제를 먹여 살을 찌움으로써 본의 아니게 블레이저와 동일한 실험을 수행해왔다. 실험에 사용된 항생제의 종류나 동물의 종을 불문하고 결과는 항상 같았다. 저용량 항생제를 투여받은 동물은 빨리 성장하고 체중이 증가한다는 것.

 

 

 마이크로바이옴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수천 종의 미생물들이 우글거리는 군집으로서 개별 구성들끼리 끊임없이 경쟁하고, 숙주와 협상을 벌이는 가운데 진화하고 변화한다. 24시간을 주기로 들쭉날쭉하므로 어떤 종은 낮에 많고 어떤 종은 밤에 많다. 당신의 유전체는 작년 이맘때와 거의 같지만, 당신의 마이크로바이옴은 아침에 일어나거나 방금 전 식사를 한 뒤 바뀌었을 것이다.

 

 

 육상 생물은 햇빛을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즉 식물과 조류와 일부 세균들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을 당분으로 만듦으로써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산화탄소가 무기물질에서 식용으로 전환되는 것을 ‘탄소 고정fixing carbon’이라고 하며,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여 탄소를 고정하는 것이 바로 광합성이다…. 그러나 심해에 사는 생물들은 햇빛을 이용할 수가 없다. 해수면에서 이슬비처럼 내려오는 유기물질을 여과하여 재활용 할 수는 있지만, 정말로 번성하려면 대체에너지원을 사용해야 한다. 민고삐수염벌레의 공생 세균에게 있어서 대체에너지원은 황이나 열수 분출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화물이다. 세균은 이 화합물들을 산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유리된 에너지를 이용하여 탄소를 고정한다. 이처럼 빛이나 햇빛 대신 화학에너지를 이용하여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것을 ‘화학합성chemosynthesis’이라고 한다.

 

 

 거대흰개미는 거대한 개미집을 짓는데, 그중에는 첨탑과 부벽이 어우러진 9미터짜리 고딕식 건축물도 있어 보는 이의 눈을 아찔하게 할 정도다.

 

 

 세균들은 이러한 수평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HGT)을 수십억 년 동안 실행해왔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깨닫게 된 것은 1920년대였다….

 우리는 HGT가 세균의 삶에서 가장 심오한 측면 중 하나임을 알고 있다. HGT는 세균을 맹렬한 속도로 진화시킨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세균은 기존의 DNA 내에서 적당한 돌연변이가 축적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미 도전에 적응한 유경험자들로부터 유전자를 빌림으로써 당면한 위협에 단번에 적응한다. 수평으로 이동한 유전자 중에는 처음 보는 먹이를 잘게 써는 칼도 있고, 항생제로부터 보호해주는 방패도 있고, 새로운 숙주를 감염시키는 무기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선구적인 세균이 혁신적인 형질을 진화시킨다면 이웃들도 금세 똑 같은 형질을 보유하게 된다. 

 

 

 세균들에 반해 동물들은 빨리 진화하지 않으며, 새로운 도전에 서서히 꾸준하게 적응하는 것이 보통이다.

 

 

 헤만의 연구 결과는 2010년에 발표되어 지금까지도 가장 주목할 만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중 하나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수백 년 전 일본인들이 해조류를 날로 먹었을 뿐인데, 그 사건을 계기로 일련의 소화 관련 유전자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깜짝 여행을 떠났다. 유전자들은 해양 미생물에서 장내 미생물로 수평 이동하고, 그 다음으로는 엄마의 장내 미생물에서 아기의 장내 미생물로 수직 이동했다.

 

 

 인간은 해조류의 탄수화물을 분해하기 위해 굳이 유전자를 진화시킬 필요가 없다. 그걸 소화시킬 줄 아는 미생물을 꿀꺽 삼키기만 하면, 우리의 장내 미생물들이 HGT를 경유하여 그 기술을 배울 테니 말이다.

 

 

 진딧물은 유전체 속에 돌연변이를 대대손손 서서히 누적시키는 대신, 환경에 올바로 적응한 미생물의 유전자를 세트로 받아들인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기존의 직원들을 서서히 훈련시키는 대신 경력자를 채용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세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재다능해서 우라늄에서부터 원유에 이르기까지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이 없다.

 

 

 심지어 한 사람의 미생물 군집을 통째로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방법(대변 미생물총 이식술)까지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발상들은 ‘미생물은 동물의 적이 아니라, 동물계를 형성하는 토대’임을 인식할 때 가능하다. 세균에 대한 낡고 위험한 ‘투사적 메타포’, 즉 세균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므로 사생결단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냥하고 뉘앙스가 풍부한 ‘정원사적 메타포’를 받아들여야 한다.

 

 

 의학 상식의 핵심은 ‘부족한 것을 채우고, 불필요한 것은 제거하라’는 것이다. 현대 의학적 사고 중에서도 상당수는 이런 단순한 공식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마이크로바이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등수학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마이크로바이옴은 수많은 구성 요소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상호작용하는 대규모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프로바이오틱probiotic이란 단어를 어원적으로 해석하면 ‘생명을 위하여for life’라는 뜻이며, 따라서 ‘생명에 반대하여against life’라는 뜻을 가진 항생제antibiotic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농도가 가장 높은 프로바이오틱스라 해도 봉지 하나당 고작 몇 천 억 마리의 세균을 포함할 뿐이다. 언뜻 엄청나 보이는 수치이지만, 소화관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미생물들은 그보다 최소한 100배는 많다. 그러니 요구르트 한 병을 삼켜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이다. 게다가 실효성도 의문이다. 유산균 음료에 들어 있는 세균들은 성인의 마이크로바이옴을 구성하는 주요 멤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세균들은 대체로 메치니코프가 옹호했던 것과 같은 계열, 즉 젖산을 만드는 락토바실루스나 비피도박테륨 계열에 속하는데, 과학적 이유보다는 실용적인 이유(배양하기 쉽고, 발표 식품에서 이미 발견되었으며, 상업용으로 포장된 식품과 소비자의 위장 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로 선택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고든은 액티비아Activia 요구르트를 하루 두 번식 일곱 주 동안 마신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을 모니터링하여 이 사실을 밝혀냈다. 액티비아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세균들이 참가자의 소화관에 정착하지 않은 것은 물론, 마이크로바이옴의 구성도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오픈바이옴OpenBiome이라는 비영리단체는 대변 은행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지원자가 소정의 검사를 통과하면 그의 대변을 채취하고 여과하여 캡슐에 넣은 다음 냉동 보관하다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대변’을 요청하는 병원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냉동 대변 캡슐을 삼키는 행위는 FMT의 엽기적인 성질을 보여준다. 이 캡슐은 언뜻 일반 의약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부분이 정체불명의 제품이다. 제약회사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신 지원자의 항문에서 배출되는 터라 품질의 동질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앨런-버코는 작금의 사태를 개척 시대의 무법천지에 비유한다. “아무나 아무 대변을 사용하고 있어요, 마치 대변에는 임자가 따로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의 선도자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우려하여 최근 연구자들에게 ‘기법의 공식화’, ‘공여자 및 수혜자 데이터의 체계적 관리,’ ‘예기치 않은 부작용 보고 체계 확립’ 등을 촉구했다.

 

 

 심지어 가장 익숙한 약물 중 하나인 타이레놀이 특정인에게 더 잘 듣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보유한 미생물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주변에 온통 세균의 향기를 풍기기 마련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세균 자체 또한 배출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미생물을 세상에 끊임없이 파종한다. 물건을 만질 때마다 미생물의 각인을 남기고, 걷거나 말하거나 긁적거리거나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재채기할 때도 독특한 미생물 군집을 공간에 내뿜는다. 모든 사람들은 시간당 3700만 마리의 세균을 분무하는데, 이는 우리의 마이크로바이옴이 체내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환경과 교류한다. 

 

 

 연구 결과 모든 가정은 각각 독특한 마이크로바이옴을 갖고 있으며, 가정의 마이크로바이옴을 구성하는 미생물을 대부분 가족 구성원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뒤 24시간 안에 기존의 미생물 위에 우리의 미생물을 덮어씌운다. 그럼으로써 ‘타인의 집’을 ‘우리의 집’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번스는 공중화장실의 변기를 연구함으로써 이 사실을 증명했다. 그에 의하면 대변의 미생물은 변기에 진을 치고 있다가 소용돌이치는 물살의 힘을 빌려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지만, 궁극적으로 다양한 피부 미생물 군집에 제압당해 자취를 감춘다. 그런데 변기를 깨끗이 닦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동안 전멸했던 대변 미생물들이 다시 변기를 빼곡히 뒤덮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이런 역설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변기를 자주 닦을수록, 변기에는 더 많은 대변 미생물들이 우글거리게 된다.”

 

 

 ‘홈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람들이 여러 장소에 남기는 미생물들을 이용하여 그들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길버트는 롭 나이트와 함께 그것을 범죄 수사에 응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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