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 안전가옥, 2024(초판 17쇄)

 

 

 

 내 목에는 17년째 가시가 걸려 있다.

 

 

 밤이 되면 음울해지는 시장의 서늘한 공기와 묵은 비린내, 검다 못해 우주처럼 느껴지는 바다를 지금도 기억한다.

 

 

 살던 동네와 가까운 대도시의 대학에 들어갔다. 전공은 조소였는데, 다른 무엇보다 손에 쥘 수 있는 날카로운 도구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 도구들의 뾰족한 끝을 보고 있자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부드럽게 가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한 치의 흠집도 없이 놓인 푸딩이나, 고운 두부를 마구 뭉개고 싶어지는 충동과 닮았다. 가끔은 그것으로 내 턱 끝에서 쇄골까지를 주욱 갈라 버리고 싶기도 했다.

 

 

 “다들, 있는 것도 그냥 없다, 없는 것도 있다 하고 사는 거죠.”

 

 

 물은 폭우를 기다렸다. 물귀신이 땅을 밟을 수 있을 때는 비가 와서 하천이 범람할 때뿐이었다. 온갖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는 그런 날, 그런 날에는 어차피 다들 뭔가 선을 넘으므로 물도 물에서 나갈 수가 있었다. 숲에게 가기 위해서는 비가 필요했다. 하천이 범람할 정도로 많은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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