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페이지> 앨범을 들으면서 집을 나왔다.
오래간만에 듣는 <페이지>네.
라고 생각했더니 불현듯 안좋은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 읽었던 어느 음악평론가의 글이었는데 이 사람의 말인즉
한국문화에서 자란 한국인이 외국곡을 들으면서 좋아할 수는 있지만
참된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글이었다.
그때는 주입교육의 사생아로서 평론가의 말인데 맞겠지.
라고 생각하고서 한국음악만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위의 음악평론가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둘 것을 그랬다.
이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이사람의 자녀를 붙잡아
이사람이 당시에 쓴 글을 보여주고
"이게 너의 아버지가 쓴 글이야!"
라고 한다면 이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종이를 집어던지며
"이게 아버지가 쓴 글이라면서! 미친 거 아냐?"
라고 말해줄 것이 아닌가.
카디건스나
롤링스톤스의 곡을 들으면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게다가 한국 음악 어디서도 외국음악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부분이 없는데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만든 갱스터 랩이나, 어그레시브 락을 듣고서
감동을 받는다면 그게 한국음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리가 있나.
김동률, 양파, 또 누구누구누구처럼
외국 음대 유학을 다녀온 한국인 가수들의 음악의 정체성에는
외국음악성이
없을 수가 있나.
무엇보다도
정지용의 <향수>를 보면 이 사람이 옛 고향의 실개천소리와
소울음소리를
떠올리며 얼마나 감격해하는지 느낄 수가 있는데
새소리, 소울음소리, 실개천소리에도 감동을 느끼는데
단지 다른
나라의 음악이라서 감동을 못느낄리가 있나.
젠장! 내 중학교 시절 영혼을 돌려다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싸구려 늙은이 평론가야!
중학교가 암담하기는 했는지 또 한 명 있다.
그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자식을 불러내서 따귀를 딱, 때린 뒤에
너의
아버지가 쓴 글이야, 하면서 보여주었으면 좋을
그런 글을 쓴 사람은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이미 머리가 하얀 늙은이였고 무슨
문학박사였다.
이 사람의 말인즉, 가장 빛나는 감수성의 시기에 포르노를 접하는 것은
시인되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자신의
영혼에 해가 되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또 주입교육의 62만 번째 사생아로서 그걸 믿었고 친구들이 몰려가서
포르노 비디오를
보거나 포르노 잡지를 볼 때 기어코 눈 돌리며
그 무리에 섞이지 않고 호기심을 억눌렀다.
애초에 호기심이 없었다면 모르되,
있는 호기심을 키우지는 못할 망정
억누르도록 유도하는 <상상저하제>를 이 늙은이는 처방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집어
삼킨
불행했던 저 고르고다스 언덕의 사생아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이 모든 불행한 사건들을 거울 삼아 모서리로 가슴을
그으며
모든 나라의 음악과 모든 나라의 포르노를 감상하도록 노력하려 하고 있으나
음,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
일단
귀찮다.
대학교 때 비교적 젊은 아저씨가 쓴 글을 읽었는데 단어에 대한 묘한 해석이 마음을 흔들었다.
<불행=
행복하지 않은 상태>
이것을
<불행= 행동하지 않은 상태>와 맞붙여서
<불행이란 행복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행동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고 표현했다.
즉, 불행이란 어린 나이에 포르노를 보는 환경이 아니라
포르노를 보고 싶은데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며
즉, 불행이란 "음악을 하고 싶은데 집에서 반대하는 상태"가 아니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행동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얼마전까지 열심히 마사이족의 우아한
걸음걸이를 연습하던 것이 떠오른다.
한국의 서울에서 아프리카인처럼 걷고 싶었다. 불행히도 창과 방패는 없었지만
크로스백을 방패처럼
들고서 마사이족의 걸음을 연습했다.
지오그래픽지를 보다가
"지구상에서 가장 우아하게 걷는 종족"이라는
기사를
발견하고 감동받았던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멀리까지 잘 걸을 수있는 종족이라니.
불과 한 달 여만에 힘들어서
(지하철
안에서 우아하게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뒀지만 문득,
"그때 열심히 마사이족의 걸음을 연습하며 동네를 해가 지도록
돌아다닐 때 행복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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