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이번 영화<활>에는 두 개의 활이 나온다.

하나는 화살을 쏘아 사람 잡는 활,

다른 하나는 악기를 연주하는 활,

 

김기덕 감독은 뛰어난 상상력으로

새를 잡는 활에 아프리카악기를 울림통으로 매달아서

연주하는 활로 연주한다.

 

즉, 새를 잡는 활을 이용해서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독창적인 악기를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음색의 뛰어남을 떠나서

<무기>를 <악기>로 만든 인류평화적 상상과 상징성은 가히

<악기>를 <무기>로 사용하는 닌자나 중국무협의 고수들처럼

본인의 일에 몰입하여 얻어진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서 정수기로 가던 중

이것을 흔들자 싸각싸각

듣기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을 알아냈다.

흔들어서 소리내는 라틴아메리카의 악기 마라카스.

그것과 비슷한 원리에 비슷한 소리.

 

그러나 일상의 주방에서

브라질 커피를 흔들며 브라질의 태양과 브라질의 노동자를 생각나게하는

눈부신 싸각싸각 소리를 들을 수있다는 것은

또 나름대로 멋진 일이 아닌가.

 

또한 마라카스가 마라카 열매를 이용하듯이

마라컵스는 또한 커피 열매를 이용한다.

 

이 악기는 사용뒤에 마실 수도 있다.

이 악기의 이름은 마라컵스라고 하자.

 

커피향과 커피의 하얀 김, 로마의 테라스를 상상하며 연주하거나

커피가 다 떨어진 조급한 밤의 금단증세를 표현하거나

세상에서 가장 멋진 눈이 내리는 날의 연인을 기다리는 조급함을 강조할 수도 있다.

 

이 악기는 물에 희석된 뒤에 찰랑랑

소리를 내거나 휘적휘적 소리를 내기도 하며

음료에 취해 내는 감탄사가 판소리의 추임새격 쓰임을 가진다.

기분이 좋아 절로 음악을 흥얼거리도록 만드는

연주자와 악기와 위장의 <혼연일체조성악기>이며,

손과 입과 

눈에 잘 띄는 하얀색 면바지를 사용하여 연주하기도 한다.

 

누군가 마라컵스를 마시며 연주하다가 바지에 흘리더라도 그것은 연주의 일부이므로 놀라지 마시라. 그것이 연주가 아니라면 왜 언제나 하얀색 깨끗한 바지에 그것을 떨구겠는가.

 

뜨거우므로 조심하고

다 사용한 마라컵스는 분리수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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