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하지만 서재에서 미술, 건축 책 보는 걸 즐기고, 흥행과 상관없이 도전 할 수있는 배역을 찾고, 행복한 부부의 아이콘이 되는 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 브래드다."
- 브래드 피트,
서울대학병원 응급실에 환자처럼 늘어져있는 잡지들 중에 그나마 읽을 만한 것이 GQ였다. 잠을 깨보려고 읽었는데 잠에 치여 힘겹게 책장이 넘어갔다. 행복한 부부의 아이콘이 되는 건 그래, 정말 끔찍한 일이지.
마침 읽고 있는 책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다. <백년동안의 고독>이후 두 번째로 읽는 마르께스 작품이다. 여기에 그야말로 남들이 보기에만 행복한 부부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부부가 등장한다.
".... 그와 같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제안했다고 하기엔 이상한 세속적인 재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즉 사치적 경제적 안정과 질서, 행복, 눈앞의 숫자 등 모두 더하면 사랑처럼 보일 수있는 것들. 그러니까 거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있는 것들만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랑이 아니었고, 이런 의문은 그녀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녀 역시 사랑이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머니가 죽을 병에 걸려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밥 사주고 위로해주며 교회로 가길 재촉하던 선도병에 걸린 한 아주머니가 전화를 했다. 목사님을 데려가야하니까 빨리 위치를 말하라고 지랄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랄이란, 즉 이 선도병 아주머니는 목사님을 데리고 어머니계신 곳까지 가야한다는 사명에 맹목적으로 휩싸여서 목소리를 거칠게 토해내며 슬픔보다는 분노로서 수용보다는 폭발과 분출로서 죽을 병 걸린 어머니의 아들내미에게 소리지르며 짜증을 내고 자신의 길을 방해하지 말고 속히 장소를 밝히라는 중세 교회의 머리나쁜 기사처럼 말을 해댔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과 사고와 말투에 한치의 의심도 없고 망설임도 없이, 만사가 나를 지켜주고 받쳐준다는 듯이 그렇게 저돌적으로 말하는 아주머니가 병원 가서는 또 얼마나 난리를 떨까.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는 또 "내가 죽는 유일한 이유가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원통할 뿐"이라는 유언이 나온다. 이 인물은 사랑 때문에 죽기를 꿈꿔왔는데 질병과 늙음에 떠밀려 죽게 되는 것을 슬퍼한다. 나의 어머니의 죽음의 이유가 사랑은 아니다. 어쩌면 삶의 이유가 그것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모두 더하면 사랑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
병원, 병간호, 헌신, 열정, 희생, 댓가, 인내, 위로, 주절주절 떠드는 것, 다정한 표정, 손과 얼굴의 매만짐, 전화연락, 안절부절, 고통, 불안, 안타까운 표정, 쓸쓸한 목소리, 분노, 안쓰러움...
모두 더하면 그래 사랑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