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양심선언, 로날드 사이더, IVP, 2005,
(평가의 말들)
! 불온한 책이다. 세상을 그대로 빼다박은 우리의 치부를 (낱낱이) 들추어 내는 통에 영 속이 불편하다....
-김기현 목사. 부산 수정로침례교회,<공격적 책읽기>의 저자
! 주님은 "너희는 세상에서 택함을 받아,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왜 그저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 김형국 목사. 나들목 사랑의 교회
! 구구절절 한국 복음주의 교회 양심의 폐부를 찌르는 눈물어린 하나님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 박득훈 목사.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 '예수를 믿는다는 이들'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예수를 본보기 삼아 삶을 꾸리지 않은 까닭이다....
- 박정신 교수. 숭실대 기독교학과, <뉴스앤조이> 편집인
! 교회 안에서는 그럴 듯한 신앙인 행세를 하면서 신앙 양심에 다소간 안식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고, 교회 밖에서는...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한종호 목사. <기독교 사상>편집부장
(책 중에서 스크렙. 전적으로 melt의 기호에 맞춰 스크렙함. )
* 갱신 운동은 기적적인 변혁이 일어났다고 자랑스레 주장했으나 여론 조사 결과는 달랐다. 이 운동원들의 이혼율은 그들의 세속
이웃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들이 아내를 때리는 횟수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다. 그들은 세속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물질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고, 인종 차별은 오히려 심했다. 철저한 회의론자들은 이와 같은 뻔뻔스런 위선에 조소를 보냈다. 일반 대중은
혼란스러워하고 역겨워했다. 갱신 운동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이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고도로 정교해진 홍보 전략에 더욱 박차를 가할
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울었다.
아, 이것이 바로 서구 혹은 최소한 미국 복음주의의 한 현상이다.
(갱신운동: 전통적 기독교사상으로 정치 사회 봉사에 영향을 주어 창조주가 의도한 사회를 만들자는 운동.)
* 갤럽(The Gallup Organization)이나 바나 그룹(The Barna Group)처럼 신뢰도 높은 여론 조사 기관이 실시한 수많은 여론 조사 결과들은 충격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갤럽과 바나가 우리에게 건네 주는 조사 결과들은 한결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매사에 쾌락을 추구하고, 물질주의적이며, 자기 중심적이고, 성적으로 부정한 생활 방식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는 내용뿐이다."... 복음주의자들의 6%만이 십일조를 한다. 인종이 다른 이웃과 함께 살기를 꺼린는 경향은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가장 심한 것 같다.
*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는 복음주의 초대형 교회들의 노력은 갈수록 대중 문화 산업 같은 세속적인 행위와 별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는 게 사실이다."
* 그리스도인들이 자기가 가르친 대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은 광대짓에 불과하다. 바나는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미국의 기독교는 20세기 중반 이후 대부분 실패했다. 왜냐하면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 조지 바나는 1999년 전국 여론 조사에서, 이혼을 경험한 사람 중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비율(26%)이 비그리스도인(22%)에 비해 약간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2001년 8월에 있었던 새로운 여론 조사에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전체 인구의 이혼율이 거의 같았는데,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이혼율이 33%이며 나머지 미국인의 이혼율은 34%였다. ...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면서 이혼한 사람들의 90%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 이혼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란 "오늘날 그들의 삶에서 여전히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께 개인적으로 헌신한" 이들이며, 또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죽은 후에는 천국에 갈 것"으로 믿는 이들이다. .. 미국 총 인구의 35-43%....
* 복음주의자는 미국 총 인구의 7-8%로 한정시킨다. 복음주의자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할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또 다른 몇 가지 사항에 동의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죄 없는 삶을 사셨다는 것, 영원한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 그리스도인은 비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 사탄이 존재한다는 것. 확실히 이러한 정의는 신학적으로 훨씬 더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그리스도인 그룹에 해당한다.
* 복음주의자들의 이혼율은 어느 정도인가? ... 전국 평균과 똑같은 수치다! 그들의 주님이요 구세주인 분이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반복적으로 이혼을 정죄하셨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인가?
*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19:4-6
* 바이블 벨트(미국 남부의 근본주의 신앙을 굳게 믿는 지역)의 많은 지역에서, "전국 평균보다 높은 약 50%의 이혼율이 집계되었다. 오클라호마 주의 프랭크 키팅 주지사는, 인구의 70%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교회에 가는 자기 주에서 이혼율이 이렇게 이상스레 높게 나타난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하였다... 이와 같은 이혼율은 강단에서는 결코 언급되지 않는 우리 삶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다."
* 존과 실비아 론스발르 부부가 매년 펴내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부 현황>은 인류 역사상 최고 부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얼마나 나누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우리가 부유해 질수록 수입의 더 적은 부분을 기부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 1968년, 평균적인 교인은 수입의 3.1%를 돕는 데 할애했는데, 이는 십일조의 1/3보다 적은 것이다. 이 수치는 매해 떨어지다가 이후 2.66%로 약간 회복세를 보인다. 십일조의 1/4 정도의 수치다.
* 복음주의자들은 부유해질수록 자기를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돈을 쓰면서, 교회에 내는 돈의 비율은 점점 더 줄인다. 오늘날 평균적으로,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십일조의 2/5 정도를 교회에 기부한다.
* 2002년 거듭난 성인의 6%만이 십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복음주의자들의 단 9%만이 십일조를 하고 있었다.
* 론스발르 부부는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십일조만 제대로 해도, 가난한 자들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1,430억 달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 세계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본적인 건강 관리 및 교육 지원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한 600억 700억 달러의 여유 자금까지 생길 것이다.
* 예수전도단 창설자 로렌 커닝햄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저는 복음주의 공동체가 좀더 검소한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본을 보여 주기만 한다면 말이죠." 이 말로 토론은 끝이 났다. 이보다 더 결정적인 권면의 말이 어디 있겠는가!
* 남침례교 총회의 후원을 받는 "진정한 사랑은 기다린다"라는 프로그램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혼전 성행위를 줄여 보려는 복음주의자들의 시도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이다. 1993년 이후로, 약 2,400만 명의 젊은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성관계를 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서약에 서명했다.... 슬프게도, 서약을 했던 이들의 88%가 결혼 전에 성관계를 맺었고 12%만이 약속을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들은 또한 성병에 걸린 십대의 비율은 "서약을 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거의 동일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일반인에 비해 동거하는 비율이 근소한 차이로 낮다는 점을 발견했다. 국가 전체로는 성인의 33%가 이성과 결혼하지 않은 채 살고 있었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그 수치가 25%였다.
* "비극적이게도, [포르노그라피에] 탐닉하는 그리스도인 남성의 비율은 구원받지 못한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별반 차이가 없다."
* 1989년 조지 갤럽 2세와 제임스 카스텔리는 미국 내 어떤 그룹이 흑인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을 가장 심하게 혹은 가장 덜 반대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통계 결과를 발표했다....가톨릭 신자들과 비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흑인 이웃을 가장 덜 반대할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비율은 11%였다... 침례교인들과 복음주의자들은 17%로 흑인 이웃을 가장 반대할 것 같은 집단에 속하였는데, 특히 남침례교인들은 20%나 흑인 이웃을 반대했다.
* 주류 개신교인과 유태인들이 미국 흑인들을 도와 자유와 평등을 찾는 역사적 투쟁에 동참했던 시민 권리 운동 기간에 대부분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그 운동에 반대했고, 어떤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 "크리스처니티 투데이"지의 공동 편집인이었던 프랭크 개벨레인은 마틴 루터 킹의 셀마행진을 보도했을 뿐 아니라 그 운동에 동참할 것을 독려했는데, 그는 다른 복음주의 지도자들로부터 적개심에 찬 반대를 받았다.
* 빌 매카트니, 마이클 에머슨, 크리스찬 스미스... 이들의 결론은 무엇인가? "백인 복음주의는 인종 차별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인종 차별 사회를 유지시키는 데 기여한 것 같다."
*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성경이 전통 가정을 지지하는지 아니면 평등주의 가정을 지지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전통 가정에서 일어나는 배우자간 학대가 40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보수 개신교회에 출석하거나 보수적인 신학관을 견지하는 남편들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가정 폭력에 관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 개혁교회에 대한 폭넓은 연구는 복음주의 교파 내의 신체 및 성적 학대 행위 정도가 이란 대중과 거의 같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그리스도인들이 복음주의자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 기독교 성직자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비그리스도인들은 44%에 불과했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에 대해서는 32%, 복음주의자에 대해서는 22%만이 긍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마 6:15)"..불행히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혐오하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을 저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과 우리의 행위가 전혀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던 당시의 물질주의자들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셨다. ...
*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눅 18:25)".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 6:330"
* 예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죄를 짓는 것 모두를 원하는 미지근한 신자들을 비난하셨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눅 16:13)"... 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그들은 코웃음을 쳤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처럼, 그들은 "돈을 좋아했다(눅 16:14)"
* 손쉬운 이혼을 정당화하는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과 달리, 예수님은 이혼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을 분명하게 제한하셨다. 예수님 시대에는, 남편이 아내와 헤어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음행한 까닭이 아닌데도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 드는 사람은, 누구나 간음하는 것이다(마 19:9)라고 말씀하셨다."
* 예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14:23)"라고 주장하셨다.
*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었다(행 2:44-450"..."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4:34)"
* 거룩하고 의롭지 못한 교회에서 비롯된 세상의 모든 복음주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조금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 피터 길키스트
* 문제의 핵심에는, 디트리히 본회퍼가 "값싼 은혜"라고 불렀던 것에 해당하는 비성경적 사상과 실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우리가 복음을 죄사함으로 축소시킬 때 값싼 은혜라는 결과가 새겨난다. 즉, 구원을 지옥에 대비한 개인 화재 보험쯤으로 생각하거나 인간을 '영혼'으로만 제한한다거나 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반쪽만 이해했을 때, 우리 문화의 개인주의 , 물질주의, 상대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이런 일이 생겨난다....
*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를 자랑하는 복음주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영원한 구원을 다음과 같은 간단한 공식에 동의하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공짜
선물인 양 뿌려댔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인류는 그 관계를 배신해 버렸죠. 하지만 그분은
당신의 인생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문 같은 말 몇 마디면 그 계약이 효력을 발휘한답니다.'" 그에 대한 반응은?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뜨내기들은 그 제안을 곰곰이 따져 보고는 자기들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계약금 한 푼 없이 영원히
보장되고, 추가 납입금도 없는 데다 말로만 동의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 거래는 삶의 변화에 대해서는 조금도 거론하지
않는다."...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
현존하는 지구인의 절반에 가까운 수의 사람들이 보고, 듣는 무엇을 나는 보고 듣지 못한다.
많은 친구, 전도사, 목사님, 교수님들, 그리고 책과 기독교방송을 통해서
"그건 너가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이야. 믿음이 없기 때문이야."라는 이유를 지적받았다.
하지만, 의심과 경계심이 많은 나는 충분한 근거 없이 누구를 믿기 힘들다.
예를 들어서, 아버지나 형이나 동생이나 친척 중에서 누구라도 진정!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단 한 분, 나의 어머니만 진정!으로 믿었을 뿐이다.
아버지가 친구를 믿어서 보증을 서고, 그로 인해 집을 날리고 빚더미에 눌리고,
그 후로 또 보증을 서서 배신 당하고, 어음들은 모두 부도가 나고, 어음주들은 도주하고,
늦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수 천번이나 지각을 했다.
믿음에 있어서 내가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 또한 나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지, 라고 결심하고서 거짓말을 필요하면 하게 된다.
이런 내가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나를 믿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군대에서의 경험을 예로 들면
수없이 많은 배드로들이 울면서 명령에 따른다.
맞을래, 할래,
두 가지 상황이 절대권력으로부터 주어졌을 경우 내가 지녔던 정의나 이상은 유치해진다.
어느 선까지를 믿음, 어느 선부터는 믿음이 아님을 구분짓기 어렵다.
예를 들어 선교자들의 수난시대 때
일본에서 특히 배교를 강요받은 일이 많았고,
일본 특유의 잔인한 고문과 고통 속에서 많은 신도들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 또한 배교를 인정했다.
폭력과 고통 속에서 잠깐 부정할 수 있는 것을 믿음,
이라고 한다면 나 역시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어떤 상황, 내 어머니 목에 칼을 들이대고 시키는 대로 안하면 어머니를 죽인다고 하는 상황, 에서도 부정하지 않는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믿음, 이기 때문에
나는 늘,
내게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수 없이 많은 친구 동료들에게
의심에 찬 시선을 보내게 된다.
잘도 그런 말을 하는 구나 너희들.
너희들의 믿음은 어느 정도이기에.
과연, 이들이 성경에 나오는 정도 레벨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 책은, 다양한 자료들은, 내가 의심하고, 비그리스도인들이 의심하는,
기독교인들의 믿음에 대한 의문과 실망을 그대로 짚어내고 있다.
어느 정도 명백한 교리나 기독교 윤리를 기독교인들이 지키지 않는다는 데에 대한
모욕감,
문제는 이 모욕감을 기독교인이 아니라 내가 받는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시선을 긍정적으로 두느냐 부정적으로 두느냐 하는 것은
결심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내내
보고 경험하는 것으로 인해 어느 한 편으로 보다 가까워지는 것 같다.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에 점수를 얻기 위해서
가장 안전하고 희망적인 그룹은 그야 물론 그리스도인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 뒤에 쓰레기장이 있더라도 내 앞에 올림픽 공원만 바라보면
나는 평생 올림픽 공원 같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대감을 품고 바라보는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말고 다른 행동을 서슴치 않고, 은연 중 그들끼리 그것을 묵인하고,
감춘 채 떳떳하게 전도하고 다닐 때
나는 도망갈 구석이 없다.
교회에서조차 이렇다면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한단 말인지.
외계인 밖에는 없지 않을까.
수중생물체나.
초등학생 중에는 선생님이 잠깐 다녀올테니까 꼼짝말고 있으라면
정말로 해가 질때까지 오줌 마려워도 화장실도 못가고 꼼짝말고 기다리는
그런 아이들이 있다. 내가 그랬다.
선생님은 오지 않았고 바지에 오줌을 쌌다.
어딘가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는지, 말한 것과 행동이 다른 일이 빈번하며
그럴 수도 있지, 실수, 약간의 방심, 우연, 이라는 변명에 싸여
간과되고는 한다.
왜 춘천명동에 있는 교회는 춘천에서 하나밖에 없는 호텔보다도 두 배나 큰데
백 여명의 노숙자는 한겨울에 시민공원에서 신문지를 덮고
12시가 넘은 교회문은 쇠사슬로 묶여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교회에 세콤 경비시설이 설치된 이유는?
게다가 올해에는 새로 종을 구입할 건데 종값이 2000만원 정도라고 목사가
설교 중에 얘기하는 의도는 뭔가.
십자가에 네온사인을 두르고 전기를 축내는 이유는 네 왼손이 하는 일을
발가락에 때까지 알아먹도록?
이런 것들이 안타깝다.
내가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사랑할지언정 미워할 이유가 없음에도
나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제외한, 이들을 둘러싼 인간들의 무리가
더러워보인다.
그건 내가 그들보다 윤리적이거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거나 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내세우는 것, 선함, 사랑, 실천, 희생, 순종, 따름을
본인들이 하지 않으면서 내세운다는 것이 심각하게 이상하기 때문이다.
조금은 다른 부분에서
군병원에서 5개월간 군종 목사님과 대화를 하면서 많이 어려웠던 부분인데
성경말씀의 이해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볼때,
교회의 입장에 따르면 이혼은 어지간해서는 해서는 안된다고 알고 있다.
1세기 이전만 해도 매우 강력하게 이혼을 금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책의 조사에서도 나와있지만, 크리스쳔과 크리스쳔이 결혼한 크리스쳔 가정에서도
불륜이 있고 폭력이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매를 맞아서 불행함을 느낀다.
이때 이혼을 허용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성경에 따르면 이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맞으며 살아야한단 말인가.
실제로 이런 이유로 정신병에 걸리는 여성들이 있었다고 한다.
성경의 말씀이 인간의 행복추구를 박탈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많은 크리스쳔 부부가 오늘날 이혼을 한다.
그 편이 보다 자신의 행복추구에 맞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 추구를 위해서 성경말씀과 다른 행동을 한다.
여기서 심하게 아이러니를 느낀다.
교회에서는 이혼을 금한다.
현실에서는 이혼을 하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을 때도 있다.
또 한가지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크리스챤과 크리스챤이 결혼해서
왜 미움과 폭력과 배신과 이혼이 생겨날 수 있지?
예를 들어서 예수님의 남자 제자와 여자 제자가 결혼했는데
가정불화가 생긴다면, 근본적으로 크리스챤을 정의하는데 어려움이 생기는게 아닐까?
이런 부분에서 뭔가 엉성한 느낌을(그들이 가짜 크리스챤인듯한) 받는다.
무슨 쇼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신부님이나 목사님 앞에서 영원항 사랑을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서
라발라발라 하게 된다면
이들의 믿음, 이들의 신앙, 이들의 맹세에 대해 회의를 가지지 말란 법이 없다.
현대의 크리스챤들은 어느 정도 이혼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데
비크리스챤인 나로서는 당연히 이혼의 자유가 있어야 하므로 바람직하게 본다.
다만, 책의 저자도 지적하듯이 크리스챤으로서
어떤 입장인 거냐는 말이다.
크리스챤 저마다 답이 다르다.
구교니 신교니 감리교니 복음교니 등등등...
이들은 성경에 있어서 해석하는 바가 약간씩 다르다.
어느 물에 손을 담가야 할 지 알수가 없다.
이것이 비그리스도인이자, 희외주의자이며 약간의 니힐리스트로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세력을 바라보는 내 입장이다.
일본은 침략전쟁을 사과하라! 고 하고
독일은 매년 총리가 사과문을 발표한다. 올해도 슈레더촐리가 폴란드며 등등을
돌아다니며 사과연설을 했다고 한다.
역사에 대한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과발표 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마녀사냥이 이루어졌고, 불에 태워 죽이고, 고문을 가한 데 대해서
정치가처럼 교회세력은 누구도 책임을 지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십자군 전쟁을 사과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정당성과 정의수호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하더라도(물론 웃긴 얘기지만)
진리를 위해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허락 수행한 교회는 왜 사과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다만 과거의 종교인들이 벌인 일이라 묻어두어야 한다면,
독일이나 일본도 전쟁세대가 죽고 나면 더이상 반성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인류의 도덕성과 윤리성에 기준점을 제사하는 교회세력에서 꼬리를 감춘다면
웃음을 참기 힘들다.
인종차별반대시위를 반대한 미국백인기독교인들의 다수 역시 왜 사과하지 않는가.
교회세력과 시스템과 교인들의 생활은 알면 알수록
어느 부분인가 가서 흐지부지하고 경계선이 없다.
부자가 천국가기가 힘들다는, 비기독교인조차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 말은
왜 목사님의 그랜져,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볼 때 마다 구겨져
댕~ 댕~ 처량하게 울리는지 모른다.
왜 나보다 한 살 후배인 목사님의 아들녀석은
군대에서 사람 패고, 학교에서 욕과 음주를 즐기더니,
졸업할 때 되니까, 이제 맘잡고 목사 준비를 해야겠어,
하면서 독서실과 학원을 들락거리며 필사적으로 시험공부를 하는 걸까.
(공무원 시험 준비과정과 비슷하다)
왜 신학대학에서는 수사법과 발성법을 가르치는 걸까.
수사법과 발성법의 목적은 또 어딘가 본래의 목적과 어긋나는 것 같다.
신도들이 말씀을 들을 때, 보다 성령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목사들은 시험 쳐 들어간 대학에서 목에 힘주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한다.
성스러운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엔터테이너도 아니고.
대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격을 시험 쳐야 얻을 수 있는데다가
시험문제에 국영수, 혹은 수능점수가 포함되는 이유는 ?
어느 교회에서는 음주를 허용하고 어느 교회에서는 불허용하는데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이런 정도는 이렇든 저렇든 상관 없는 게 진리인지.
여의도 무슨 거대교회를 다니셨으며,
주된 기도의 내용이 "살려주세요"였던 어머니를 위로한다.
기도의 목적이 주로 "자신과 가족의 행복"이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고
어머니처럼 엉성한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해내는 이유도 모르겠고
어머니를 부추겨서 어머니의 가족 하나하나를 교회로 오게끔 만들려고
노력한 여의도 교회 관계자분들 수고 많으셨고
교회 관계자분들이 내가 무슨 불경스런 말만 하면 발끈! 해서 성경을 들이밀거나
과장되게 한숨을 쉬면서 내 영혼이 안쓰럽다는 표시를 유치하게 드러내거나
그래도 언젠가는 주님의 길로 오실거라는 고전적인 대사를 읇는데
내가 정작 주님의 길로 가게되더라도, 어쩐지 그 길에 당신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내가 믿음이 멀어 주님을 느끼지 못한다면,
주님을 따르는 사람에게서는 주님을 스친 빛나는 향기를 살짝이라도 맡을 수 있어야 할 건데
불행히 내가 마주친 교인들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 없고
얼굴과 목소리가 딱딱하며
심지어는 비그리스도인에 대해서 경멸하거나, 동정심을 갖을 필요 없다고 한다.
캠퍼스 안에 몇 개나 되는 영어 이니셜로 된 기독청년동아리는
이렇게 엮여 커플이 되거나 저렇게 엮어 커플이 되고
때로는 연애하려면 교회 가면 된다는 진담성 유머가 돌고
주님께 보다 헌신하려 해, 라고 말하고서 남자친구와 헤어진 한 여자는
왜 두 달 만에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는 걸까. 혹시 그 남자가 주님?
나는 고2 때부터 10여년 간 30여 종의 아르바이트를 쉼 없이 해왔는데
그리스도인 중에 좋은 파트너가 심하게 아닌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가 한 일들은 막노동에서 주유소, 방송스텝과 단란주점, 승마장까지 있는데
대개는 단순노동의 일이 많았다.)
내가 겪은 몇 몇 그리스도인들은
지각을 자주 하거나, 약속을 어기고, 책임을 미루고,
일이 심할 때는 투정이 심해지고, 엄살 부리고(사랑을 너무 받고 컸나?)
못하겠다,는 말을 자주 하고,
일하는 중에 전화통화를 많이 하고,
때로는 집에다 거짓말을 하고서 교회를 빠지고 밤을 새서 놀러가기도 하고,
(이들의 자유분방함에 놀랐다, 교회는 거짓말로 빠져도 되고, 하나님은 알더라도 용서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과음을 하고 욕을 하고 가끔은 폭력을 쓰고
별로 사랑스럽지 않은 말투를 쓴다.
근무 파트너로서 느낀 바를 요약하자면,
일하는 면의 성실도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비그리스도인과 아무런 차이가 없고,
책임감이 낮은 경우가 많고, 요령도 잘 부린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모든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거짓말 하고 교회 빠지고 놀러가던 그 녀석은, 내가
그래도 돼? 했더니 보통사람과 똑같이 베시시~ 웃었을 뿐이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봉사와 헌신, 무엇보다도 사랑을
평생에 걸쳐 느끼고 받고 주어왔을 이들이 왜
업무에 있어서 그런 점을 조금도 눈치 채도록 해주지 않는 걸까.
책의 내용을 포함 이 글의 모든 것을 통 털어서 요약하자면
개나 소나 지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니 헷갈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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