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꽃에 물주는 분무기로 물을 마시고는 했다.
"왜 그걸로 물을 마시냐, 화분에 물주는 건데" 하길래
"나는 식물인간이다!" 고 대답했다.
재밌게도, 요새 일하는 곳에서 난에 물을 주는데
'마운틴 듀' 음료수 pet 병에 물을 담아서 준다.
나는 또 종이컵을 놔두고
이 병에 물을 담아서 마시고는 한다.
"그거 난에 물주는 병인데..."
"나는 식물인간 이예요."
"아, 썰렁해~"
이렇게 되고 있다.
식물처럼 마시기 위해서는 역시 빨대가 필요하다.
삼투압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쭈욱 빨아들이다 보면
목이나 손의 움직임이 거의 없고
입을 직접 대고 마시는 것만큼의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식물적 움직임에 가깝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그리 식물인간 같지가 않다. 오히려
동물인간, 짐승인간이 아닌가 싶다.
본래 포유류에 속하긴 하지만,
짐승들 틈에서 살다가 상처를 입고 시를 씁내 하는 사람들은 다분히
식물적 사상과 행동을 동경하고는 한다.
사실, 나도 그랬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과거 어느 시인을 보아도
자연예찬자이자, 식물적인, 정적이며 평화로운 시를 지향함을 알 수 있다.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박목월 등)
(정지용에서부터 조금 바뀌는 것 같다.)
어느 평론가가 말했는데
시에는 세 가지 성향이 있다고 한다.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
그런데 한국에는 식물성의 시가 거의 90% 이상이라고,
동물성, 특히 광물성 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동감이다.
인간의 짐승성, 동물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시를 통해 무언가 본성을 초월하는 경지를 추구하기 위해
옛 사람들은 시를 써왔는지 모른다.
즉, 보통 인간으로부터의 반발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아예
시인=식물성 으로 고정관념이 생겨버릴 지경이다.
이상이나 김수영 이후로 물론, 그런 고정적인 성격은 완전히 바뀌어 버리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부 아줌마 시인들은 끝없는 평화, 끝없는 자연, 끝없는 동경, 끝없는 아침을 동경한다.
그것도 좋다.
요즘의 젊은 시인들은 또, 동물적인 시를 쓰는데
적나라하게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욕심, 두려움, 적대감, 등
본래 인간 속성을 오히려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광물성의 시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인간성을 초월한다기 보다, 차라리
생명성을 초월한다는 건가.
무뚝뚝한 사람을 보면
돌같은 녀석이라고 하고
또 냉정한 사람을 보면
얼음같은 녀석이라고 하고
또 건강 튼튼한 사람을 보면
강철같은 녀석이라고 하는데...
무언가 심취하여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하고 단아한 심경을 지닌 사람에게서는
식물적인 느낌을 받는다.
무언가 열기를 띄고 갖가지 본능에 괴로워하면서, 본능 충족과 억압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술과 약에 빠져 방황하는 사람에게서는 동물적인 느낌을 받는다.
광물적인 사람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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