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기다릴 순 없었는가"(1)

- 슬램덩크 중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는 절박함으로 서두른 슛을 쏘아 불발에 그친 정대만을 보고 능남고농구부 감독이 안타깝게 하는 혼잣말이다.

 

 

 

 

"기다릴 줄 모르면 성공할 수 없다"는 말도 있는데(2)

누가 했는가 하면, 내가 한 말이다.

(사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말이라서 누가 한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나도 발 한 쪽을 내밀어 본다는 말씀)

 

 

 

(1)의 말도 (2)의 말도 무작정 기다리라는 게 아니라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때나 하던 짓인데

몰래 세례명 '비아'의 노트에 ( )( )( )( )( )( )( )()  라고 적어놓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내가 쓴 낙서 같은 진심을 보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근데...

3일이 지나가는데 전혀 노트를 펴볼 기미가 없다. 이런...

 

조급해진 나는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노트 왜 요새는 안 보니?"

"노트 좀 보지?"

 

라고 말하고 싶다.

 

때로는, 좋아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좋아한다는 표현을 참고

적당한 순간까지, 즉,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사랑에 빠진 인간은, 병에 걸린 듯, 아주 정신 못차리고서는

그토록 주변에서

"말하면 안돼!"

"참아!"

"덤비지 마!"

"서두르지 마!"

"그리고 기다려!"

 

해도 기다리지 못하고 다가서고 상대방을 물러나게 만든다.

 

그런데 한 편,

너무 좋아하고 또 그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죽겠는데

냉정하게 때를 기다리고, 숙고하고, 계획을 이루어 낸다는 것도

강렬한 사랑 같지는 않다.

 

옛 영화에 나오는 촌스런 대사

"너를 위해서는 불속에라도 뛰어 들 수 있어!"

쿨한 마인드를 지향하는 요즘 젊은이들과는 매우 다른 아주 골때리는 마인드이지만,

쿨한 마인드를 향해 초고속 질주하던 일본인들이

<겨울연가> 스타일에 열광하고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동경만경>에서처럼 정말로 사랑과 고통 때문에

자기 몸에 불을 지르거나 동경만 바다을 헤엄쳐서 너에게로 갈테니 나를 받아달라는

옛스런 감성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혹시나 해서 말하거니와 요시다 슈이치는 대단히 현대적인 감성의 소설가로서

처음 읽는 독자는 거의 무덤덤 건조기 가득, 이렇게 느낄 정도로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작가이다. <파크라이프> <동경만경>이 가장 좋았다.

 

(파크 라이프는 아쿠타카와상 수상작인데, 일본 소설 중에서는 아쿠타카와상 수상작과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읽으면 후회는 없다. 나오키상 수상작의 경우 들쭉날쭉한 감상을 받는다. 일본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도 많고 후보작가의 작품도 많다. 이때쯤 굳이 반면 한국은... 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일본은 ... 이다, 에서 멈추는 것도 좋겠다.)

 

(한국에서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들이 가장 최신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그렇게,

참고 기다릴 수있는 사랑은, 결국,

참을만 하고, 기다릴만한 감정이라고,

못참고 몸을 던지는 사랑만 못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편,

불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것이 반드시 열정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녀석들은 다만, 불을 앞에 두고서 기다리는 것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에

차라리 죽을 망정, 기다리는 짓, 멀찍이 구경하며 인내하는 짓은 못하겠다고하는

오히려, 체념 도피성 사랑을 수행하는 지도 모른다.

 

노벨 문학상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콜레라시대의 사랑>을 보면,

10대에 사랑에 빠진 한 남성이 무려 60년 간 결혼도 않고 방황만 하며

한결같이 자신의 사랑만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그 동안 이 여자는 최고 명문가 남자와 결혼을 하고 부족할 것 없이 행복하게 살며

이 남자를 구차하고 불쌍하게 취급할 뿐이다.

그래도 이 남자는 기다리고...60년 만에 여자의 남편이 죽자,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이룬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줘요." 하면,

돌이 되고 먼지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그야말로 고전적 사랑의 형태이다.

 

비교적 보편적인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보면

이 남자도 고독과 싸우며, 죽음 조차도 사치, 라며 고통 속에서

언젠가 그녀의 사랑을 얻게 될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자신의 아까운 젊음이 빛 바래고 젊음이 훌쩍 지나도록 기다리고 기다린다.

 

솔직히 내가 심판이라면,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당장에 뛰어드는 사랑과

그녀를 얻기 위해서라면 머리가 빠지고 피부가 쭈글쭈글 해지도록 기다리는 사랑 중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까?

 

 

 

 

 

 

ps. 세례명 '비아'는 개를 무척 좋아하고, 아무리 늙은 개도 강아지라고 부르기를 좋아하고, 나도 개를 좋아하고, 아침에 학교 갈 때부터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우리집 개, 똘똘이가 생각난다. 만약, 비아가 내 목에 쇠사슬을 걸어 묶고서, 내가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하면, 나는, 견딜 수 있을까...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각관계  (0) 2005.06.24
잠, 꿈, sleep, dream,  (0) 2005.06.22
이것 참 난처하네...  (0) 2005.06.21
대학의 목적  (0) 2005.06.21
내 연애의 목적  (0) 2005.06.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