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자꾸 나를 언니라고 부른다. 내가 알기로 어머니는 외동딸이었는데 설마하니
일찌감치 죽어버린 언니라도 있었다는 것일까.
어머니는 또 내게, 배다른 형과 누나가 있었다는 사실을 숨긴 것처럼, 별 것도 아닌 것들을
숨기고서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했다고 자신을 위안했던 것일까.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고 규칙을 못박아 두는,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티를 내는
부모들은 모두, 타블로이드판 잡지 싸구려 부록처럼 알맹이 없는 목소리를 가지고 팅-
팅- 울리는, 누군가로부터 주워들어 전달하며 자부심을 갖는, 그런 방식의 말들을 늘어놓는다.
"논술학원은 세경이 제일 좋대."
"아이들은 ( ) 해야 아이지."라는 식의.
그런 부모들의 입술은 라면 냄비 받침으로 사용하면 적당하다.
어쨌거나 내 동생 중에 57세 유방암 주부는 없는 것 같고, 그렇다면 자꾸만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이 분은 미쳤다고 해야 할까, 돌았다고 해야 할까. 조금만 더 젊어서 나를 언니라고
불렀더라면 나는 이분을 "미친년"이라고 불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아들인 것 같고, 또 연세가 드신 분이고 하니까, "뇌에 충격을 받으신 분"이라고 점잖게 부르고 있다.
24시간 중 30분 밖에 잠을 안자고 하루 종일 떠드는 초인적인 똘아이가 되어버린 내 어머니는
현재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넘나들며 떠들어대고 있다.
어머니는 오늘 요일과 날짜와 연도를 기억해내거나 추측해내지 못하고 24시간 동안 거의
45년 사이를 넘나들며 애가 되었다가 아줌마가 되었다가 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나는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어머니 또한, 지금 자신이 미쳤거나 돌아버렸다는 건 모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아까부터 창문에 머리를 박고 부숴져버리는 빗방울 남매들은,
돌아버린 나더러 정신 좀 차리라고 저렇게 두드려대는 지도 모르는 거다.
만약 그대가 빗방울을 싫어한다면 그나마 조금 덜 미친 것이고, 나처럼 좋다고 웃고 있다면,
조금 더 미친 것이다. 좋다고, 언니라고, 나를 부르며 웃고 있는 어머니처럼.
이놈의 병원 창문은 도무지 시원스레 열리지가 않는다. 바둥거리며 손을 내밀어야 겨우
손끝에 비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