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는 삼십대 나이에 죽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동주형이라고 부르고는 한다.

그런데 내가 60이 넘어서까지 윤동주를 동주형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호하다.

실제 태어난 연도로 치자면 증조 할아버지뻘이니까 동주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의 삶은 30 즈음에 멈춰 있으니 할아버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어벙이가 붙여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누나라는 호칭이 코딱지처럼 따라다니는

유관순의 경우도 태어난 해를 보면 할머니라고 해야 하는데

어린 나이에 죽은 여자를 할머니라고 부르자니 왠지 그분께 미안하다.

시집 못 간 것도 억울한데 할머니라니.

 

그래서 요즘은, "어이, 관순이, 총 맞을 때 아팠어? 이리 와서 뽀뽀나 한 번 하지."

이런 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누가 더 나이가 많은가, 누가 더 어른인가 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몇 살까지 사는 지를 가늠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내가 서른 밖에 살지 못할 경우,

나보다 8살이 어른 스무 살 짜리 여자애는 지금 나를 오빠라고 부르지만

(아저씨라고 하기만 해봐, 그냥,)

내가 서른에 죽고 난 뒤 이 여자가 30년을 더 살 경우

내 연령은 서른에서 멈추고, 이 여자의 연령은 50넘게 계속 이어지게 된다.

 

기억 속에서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상관 없지만,

내 삶이 서른에서 멈춰 있을 경우, 50이나 심지어 70 먹은 할머니에게서

"오빠"라는 말을 들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수명을 계산해서

나의 남은 수명을 뺀 뒤에 그것으로 나이와 어른의 관계를 계산한다.

즉, 올해 스무 살의 <하나>님은 실제 가진 나이 스물에 감춰놓은 나이 64를 합해

84살의 나이를 지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      ) 해 뒤에 죽을 테니까

내가 죽고 난 한참 뒤에, 그녀와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나는

할머님, 혹은 누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 계산되는 수명은 전적으로 내 감에 의지한다.

내 감에 누나다 싶은 분은, 현재 유치원에 다니고 계시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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