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바람의 그림자>, 문학과지성사, 2005
(대략 800p 분량의 소설인데 이제 150p를 읽었다. 아무래도 읽는 게 아쉬워지는 그런 종류의 책인 것 같다. 또 예고된 슬픔이로군, 게다가 빠져나올 수도 없는. 공교롭게도 낭만주의가 짙은 그런 소설이다. 스티븐 킹은 이런 류를 고딕소설이라고 말하면서,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낭만주의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의를 요청한다.)
* 딸은 축복이지만 누구에게도 권해주고 싶지 않은 그런 축복이란다. 왜냐하면 그 딸이 조만간 아버지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게 인생의 법칙이니까 말이다.
* 비밀의 가치는 그 비밀이 지켜져야만 하는 사람들의 가치에 달려 있다.
* 람블라스의 희미한 빛이 우리 등뒤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아버지를 쫓아서 거리라기보다는 차라리 흉터 같은 그 좁은 길을 따라갔다.
*
"다니엘, 오늘 네가 보게 될 것에 대해 아무에게도 얘기해선 안 된다." 아버지가 주의를 주었다. "네 친구 토마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이다."
"엄마한테도요?" 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는 평생 당신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던 그 슬픈 미소에 숨어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되고 말고."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우린 엄마하고는 비밀이 없잖니. 엄마에겐 뭐든지 말해도 된단다."
*
"네 친구 토마스는 재능이 있단다. 하지만 현실 감각이 부족해. 그리고 좀 뻔뻔할 필요도 있지. 성공하는 데는 그게 필요하거든..... 게다가, 토마스가 가지고 있는 권투 선수 같은 외모는 하계에서 그를 어렵게 할 거야.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결정적인 게 선입관이거든."
* "사람은 착한 원숭이처럼, 사회적인 동물로서 친구나 친척을 싸고돌고 그 밖의 인간들에 대해선 기만과 험담을 하곤 하지. 그게 바로 우리들의 윤리적 행동의 본질적 기준이야."
* "군 복무는 인구 센서스에서 차지하는 야만인의 비율을 높이는 데만 사용되지"라고 그는 말했었다. "그리고 그건 첫 두 주 안에 밝혀지기 때문에, 2년이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아. 군대, 결혼, 교회, 은행은 묵시록의 네 기수야. 그럼 그렇고 말고. 비웃으려면 비웃으라구."
*
"베아는 이미 애인이 있어요. 복무 중인 육군 소위죠."
페르민은 한숨을 쉬었는데, 화가 나 있었다.
"아, 군대. 그 원숭이 집단의 종족적 거점이자 치부 말이지? 더 좋지, 왜냐하면 네가 그 녀석에게 양심의 가책 없이 한 방 먹일 수있는 거니까 말야."
* "페르민, 아저씨는 시인이에요."
"아냐, 난 오르테가파야. 그리고 실용주의자이고. 왜냐하면 시는 아름답지만 거짓을 말하잖아. 그런데 내가 하는 말은 토마토를 곁들인 빵보다 더 진실되거든."
* "...... 하지만 그런 건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법이에요. 악의를 가지고 했든 모르고 그랬든, 아이의 마음을 독살시키는 말들은 기억 속에 박혀 남아 있다가 조만간 영혼을 태워버리고 말죠."
*
"언젠가 누가 그랬어.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춰 섰다면, 그땐 이미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 하지 않는 거라고."
*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말하는 게 아냐. 왜냐하면 난 좀 병약해 보이지만 다행히도 신께서는 내게 투우 같은 남성적 공격성과 힘을 허락하셨거든. 다른 타입의 아버지를 말하는 거야. 좋은 아버지 말야, 무슨 말인지 알지?"
"좋은 아버지요?"
"그래. 너희 아버지 같은. 머리와 가슴과 영혼이 있는 그런 남자 말야. 자식의 말을 경청할 줄 알고, 자식을 이끌면서도 또 동시에 존중할 줄 아는 남자. 하지만 자기 결점을 자식에게서 보상받으려 하지 않는 그런 남자 말야. 아들이 그냥 자기 아버지이기에 좋아해주는 그런 사람 말고 그의 인간성으로 인해 감격해하는 그런 남자. 아들이 닮고 싶어하는 그런 남자 말야."
*
"이봐, 다니엘. 내 나이에는 사태를 정확하게 보기 시작하지 않으면 곤경에 처하게 돼. 이 삶은 서너 가지 이유로 인해 살 만하고 나머지는 들판의 비료 같은 거야. 난 이미 바보 같은 짓거리들을 많이 저질러왔어. 그런데 지금 내가 원하는 유일한 것이 베르나르다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고 언젠가 그녀의 품에서 죽는 거라는 걸 알고 있지. 다시 꽤 괜찮은 남자가 되고 싶어, 알겠니? 나를 위해서가 아냐 ---- 우리가 인류라고 부르는 원숭이 합창단의 존경은 내게 안중에도 없거든 ----, 그녀를 위해서지. 왜냐하면 베르나르다는 그런 것들을 믿거든. 그녀는 라디오 연속극도 믿고, 사제들도 믿고, 누군가에 대한 존경도 루르드의 성녀도 믿는단다."
*
"내 생각에 만약 그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악의를 가지고 있었거나 교활해서가 아니고 모르고 빠뜨렸거나 품위 있게 말하려다가 그랬을 거야. 게다가 난 그가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지어낼 능력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지 않거든. 만일 거짓말을 더 잘할 줄 안다면, 대수나 라틴어 강의를 하고 있진 않을 거야. 벌서 추기경 집무실 같은 사무실에다가 부드러우 ㄴ케이크를 곁들여 커피를 마시며 주교가 되어 교구를 어슬렁거리겠지."
(제 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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