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스무살 "하나띠노"에게

 

 

 

-푸롤로구

 

후우~ 하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곡이 있다.

오래 전 신해철의 노래 중, <아버지와 나>. 유독, 오늘 그 소리가 듣고 싶다.

아주 조용하고 침묵하는 공간, 어둠 속에서 담배에 불붙이는 순간, 얼핏, 조금만

표정이 드러나고, 그것이 후우- 긴 숨과 함께 연기와 섞이는 소리를 나는 흉내 낼 수가 없다.

 

 

 

 

 

내가 몇 시간을 잤더라. 새벽 1시부터 잠이 들었어. 그리고 오전 8시에

친구가  출근하느라 부산떠는 통에 잠이 깨었다가, 순수한 소녀 xyz를 생각하며 자위를

하자마자 다시 잠이 들어서 오후 12시가 되어서 배가 고파서 일어났군. 친구의 컵라면을

하나 꺼내서 친구의 주전자로 물을 끓여 붓고, 친구의 가위로 친구의 김치를 잘라서

친구의 젓가락으로 먹었어.

 

하나띠노!

나는 너가 내게 무얼 원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네 말을, 네 심장의 스텝을 알아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를 설레게 하기도 하고, 무겁게 하기도 해. 나는 다만, 하나띠노라는

영리한 여성을 앞에 놓고서, 실제로는 나의 스무살에게 쓰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의 스무살이란, 겁없이 질주하는 스무살과는 서슴없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 도망쳐 들어간

제주도 승마장에서 말을 배워 달릴 때에도, 말아, 잘 부탁한다, 내게 친절해다오,라고 귓속말

하는, 소주 한 병을 먹다 남기는 스무 살이었다. 물론 그 후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이, 어느날

오후 자취방에 누워 정말로 지구가 돌아가고 있는 건지를 열심히 느껴보려고 할 때, 옆방에서

어느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면, 저것이 포르노를 play시켜놓은 소리인 건지, 아니면 Real action 인 건지를 고민하며, 70살 먹은 바퀴벌레처럼 벽까지 기어가 귀를 대어보고는 했던 것이다.

 

4일 전에 수첩에 적어놓은 글귀를 보면서 눈을 감으면 글귀가 보이지 않고, 눈을 뜨면 글귀가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염없이 깜빡거리고는 했는데, 그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TB를 단념한 날이었다. 제목은 '잠정적 결론의 시대'라고 했던 것 같다. 누군가 등 뒤에서 어깨를 톡톡,

두드리거나 콕콕, 찌르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그럴 때면 내가 뒤돌아 볼 필요도 없이, 관뚜껑처럼 내 등이 한꺼번에 열리면서 그 누군가 들어와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손에는 커피 두 잔을 들고.

 

이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살아가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 안심이 되고

미리 미래를 후회하는 재밌는 일도 벌어진다.

 

 

하나띠노가 나를 차에 태워 현란하거나 혹은 투박한 드리프트를 경험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은 속상하고 아쉬운 일이야. 하지만, 허지만, 아하- 그렇지만, 작은 사고에 반짝반짝 놀라고 있는 하나띠노를 상상하는 것은 또다른 재미가 되는군. 이제 막 불붙은 나무는 어느 정도 타오르기 전까지는 조마조마해. 꺼져버릴까봐. 꺼지지 말라구. 난 바람은 아니지만 부채질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런데 또, 눈을 뜨면 항상 무언가 앞에 보이고, 눈을 감아도 무언가 보여. 오히려 눈을 감으면 앞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보이는 것 같아. 그래서 결국,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뭔가 보이니까, 잠이 들어도 뭔가를 보게 되니까, 눈끝에서부터 불씨가 타들어가는 꽁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볼 수 있다는 것은 모종의 빛이 있다는 것이니까, 혹은 내가 빛을 내기 때문에 볼 수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피곤해.

 

냉장고 위에 면봉이 200개 정도가 있어. 나는 혼자 살 적에 면봉을 써본적이 없는데. 저걸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잘만 조절해서 묶어낸다면 꽃다발 같은 모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하얗게 솜꽃이 피어있는 면봉꽃다발을 만드는 상상을 해, 청바지를 꺼내 입고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니는 상상을 하지, 누군가를 만나서 이걸 건네 주는 거야. 이때 쯤이면 눈에서 딱딱, 거리는 소리가 들려. 상상이 잘못되고 있다는 거야. 대체 뭐가 잘되는 게 있기는 있는 거야.

 

오늘로 3일 째 대변을 보지 못했어. 3일 째 과식과 술을 함께 하고 있고, 3일 째 이 도시와 저 도시를 옮겨 다녔고, 3일 째 아무런 운동도 하지 못했어. 이중에 내 변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환경이 바뀌는 것과 운동을 멈춘 것이 되겠지. 전에도 자주 그랬으니까. 거울을 보면서, 3일 간의 과다한 음식이 이 뱃속에 있는데도 배가 나오지 않으니 역시 운동은 좋은 거라는 생각을 했어. 내일부터 해야지, 운동을. 그러면 오늘 중에 죽을 수 있을 거야.

 

하나띠노야.

 

지금 내 뒷골에서는 뒷동산에 올라간 숙취가 나무를 찍어 넘기고 있어. 다음 번에 또 편지를 써달라고 하더라도, 나는 안쓸지도 몰라, 친절한 사람이 아니거든. 사고에도, 음주에도, 두통에도,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편견 속에서도, 잘 살고, 드라이빙 하고, 어떤 것들은 열심히 기억했으면 좋겠어.

 

기억이란 자연스럽게 되는 거지, 이런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리고는 잊어버린 것들과 잊어버렸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푸석푸석한 석회질로 변해버리거든. 어떤 것들은 깊은 물속에서 꾸역꾸역 쳐들어오는 물로 인해 정신이 아찔하고 코가 매워 썩어버릴 것 같더라도 열심히 기억해야만 해. 처음 손톱을 스스로 자르던 순간이라든지, 처음 바지나 치마를 입은 채로 오줌을 쌌던 날의 구름이라든지, 유쾌하게 비를 맞은 날과 한 손에 빗물을 한 손에 눈물을 모아 뭉쳐 흔들던 때의 웃음소리 같은 것들은 생각보다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니까.

 

누군가 내게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겠느냐고 묻는다면, 분에 넘치는 선물이지만 사양하겠다고 말하겠어. 그건 이제 내 것이 아니야. 나에게는 스무 살보다는 낡고 빛 바랬고 잔고장도 많고 연비도 떨어지는 데다가 그나마 보험도 없지만 그래도 넉넉하고 그래도 편안하게 잘 맞는 스물 여덟 살이 있어. 친구가 그러더라. 이왕 무대뽀로 떠나는 거라면, 여행자보험이라도 들고 가라고. 서른 여덟이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내가 타고 날아가는 비행기가 추락해서 많은 이들이 죽어간다면, 나는 그 중에 한 명을 구해서 스타가 될 거야. 처음에 행복하다가 나중에 번민하겠지. 그렇지 않니?

 

 

 

 

 

- 에필로구

 

요즘엔 이런 말이 좋아. one more time?" 

한 번 더?

 

한 번 더 해보겠어?

 

한 번만 더...

 

 

 

 

 

2005. 08. 22

 

쓰레기 수거 지역이 있는 언덕에서, 조용한 "메르꼬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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