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현스님

 

 

허공엔

주먹이나 온갖 것이

다 들어가듯이

 

구멍 하나 없는 나무토막에

못이 박히는 것은

그 안에 틈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강철을

무르디 무른 물이 헤집고 들어가

매끈하게 잘라 낸다는 것도

역시 틈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들어올 수 있는

마음의 틈을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 이 시에 대해 불만을 얘기하라면 스물 일곱 가지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허공엔/주먹이나 온갖 것이/다 들어가듯이'라고

마치 기본명제라도 되는 듯이 얘기하고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허공에 비행기를 띄우거나 주먹을 휘두르거나 빌딩에서 툭 떨어지고, 비가 내리는 이

모든 것들을 '허공'에 '들어가듯'이라고 말하는 것에 인정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들어가다'라는 말은 '나오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는 말인데

그렇다면 '허공'에서 나오는 행위가 설명 되어야만, '허공'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성립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주먹을 하늘로 높이 올리면 들어가는 것이고 축 늘어뜨리면 나온 것일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책 중 하나가 <좋은 생각>인데, 전체 컨셉 자체가 나와 안맞을 뿐더러,

다분히 일방향 메시지와 강력한 게이트 키핑을 일삼고 있고, 그런 책은

일종의 선도, 계몽, ..화,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시에서 가장 마음에 안드는 연은 역시 마지막 연이다.

'다른 존재들을 이해'할 수있다는 낙관적 베이스도 불만이고

'다른 존재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듯한 메시지도 불만이고

가장 불만은 ".... 해야 합니다"라는 식의 문장이다.

 

이것은 주로 종교지도자들이 주제 넘게 자주 쓰는 스타일의 문장인데,

"...해야 합니다"라는 식의 발언의 근거는 언제나 상과 벌의 원초적이고 뜬금없는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지옥 혹은 천국이 제공될 것이기 때문에 "... 해야 합니다"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적나라한 근거를 바탕으로 "...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3주 정도 교육받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매우 훌륭한 이유는

1연의 '하늘', 2연의 '나무토막', 3연의 '강철', 4연의 '사람'을 동일한 성질의 것으로 보는

수준 높고 깨끗한 시선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본인이 느끼고 깨달은 어떤 것을

한글을 아는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고 쉽게 읽고 쉽게 끄덕일만하게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자기 스타일'의 욕심을 버리고

다수 (이를테면 백성들?)의 시선에 맞게 차근차근 편안한 어조로 설명해준다는 것은

과연 종교 수행자다운 태도로 볼 수 있겠다.

 

물론 나는 남보다 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내 스타일이 더 중요하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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