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
길을 건넌 개 한 마리가
전봇대 앞에 가만히 서있다
가만히 서서 할딱 할딱 햇빛을 핧는다
오늘따라 기름진 햇빛
을 쬐며 개의 침 냄새를 맡는다
개각 쭉쭉 빨던 어미개의 젖 냄새도
난다
설탕도 크림도 없이 커피 안에 햇빛을 섞는다
피렌체에 한 발 인사동에 한 발 딛고
인도네시아만한 커피스틱을 휘젖는 기분이다
횡단보도 흰 선과 흰 선에 한발씩 걸치고 서면
차들이 좀 부드러워 보인다
커피에 크림 섞이듯이
아슬팔트에 스며드는 차들
알갱이들이 둥둥 떠다닌다
커피잔 같은 도로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사람들은 모두가 한 알 한 알
설탕 알갱이 같다
그래서 특히 끈적거리는 종로 3가
봄빛
에 설탕을 뿌려 놓으면
다들 약간씩 녹아 섹스도 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어지고
여행이나 폭행, 평화, 행복 같은 걸 바라게 된다
그리고 이내 온갖 먼지들이 후두둑 달라붙어서
떨궈내려 뒤굴거릴수록
범벅이 된다
눈물처럼
호소력이 있는 먼지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는데
햇빛에 털을 말리던 개가 들었을 뿐이다
차라리 먼지라도 되어 달라붙어 살고 싶다고는
속으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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