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가속운동은 동일한 현상이므로, 만일 당신이 중력의 영향을 느낀다면 그것은 곧 당신이 가속운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력은 물론이고, 아무런 힘도 느끼지 않는 관측자만이 “나는 가속운동을 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다.
뉴턴이 땅바닥에 한가롭게 앉아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뉴턴과 지구가 사과를 향해 위로 달려 올라간 셈이다.
분명히 이것은 운동에 관한 기존의 관념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아인슈타인식 논리는 “중력에 저항하지 않는 한 물체는 중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간단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중력에 완전히 몸을 내맡기면(자유낙하하면) 당신은 중력을 느낄 수 없다. 몸의 체중을 느끼려면 어떻게든 추락하는 것을 방지해야 하고, 이는 곧 중력에 저항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몸이 아무런 저항 없이 중력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면 당신은 텅 빈 우주공간에 가만히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가속운동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지금 당신의 몸은 구부러진 시공간의 굴곡을 따라 이동하려고 하지만, 의자나 방바닥에 막혀 운동이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는 몸을 위로 떠미는 듯한 힘을 항상 느끼면서 살고 있다. 바닥에 서 있을 때나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또는 침대에 누워 있을 때에도 어떤 힘이 우리의 몸을 항상 위로 밀어 올리고 있기 때문에 시공간의 굴곡을 따라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다이빙대에서 몸을 날렸다면 당신의 몸은 시공간의 굴곡을 따라 자유롭게 이동한다(자유낙하).
아인슈타인이 알아낸 답은 당대의 물리학자들에게 낭보가 아닐 수 없었다. 공간의 굴곡은 뉴턴의 중력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정확하게 “빛의 속도로 전달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중력이 전달되는 속도는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이 빛의 속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새로운 중력이론을 완성시켰다. 외계인의 공격으로 갑자기 달이 사라졌다면, 지구의 파도는 즉각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약 1.5초가 지난 후에 사라진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면서 사정은 또 달라졌다. 시간과 공간은 우주의 진화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온 변화의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공간의 특정 장소에 물체가 존재하면 그 주변의 공간을 왜곡시키고 왜곡된 공간은 물체의 운동을 야기한다. 그리고 물체가 움직이면 공간은 또 다른 형태로 왜곡되고… 이런 과정은 끝없이 계속된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수용한다는 것은 곧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의 개념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뜻이다.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반복적인 사고를 하다 보면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적 관점에 익숙해질 것이다. 당신이 움직이고 있을 때, 당신의 눈에 보이는 ‘지금’은 정지해 있는 사람들의 ‘지금’과 다르다고 상상해 보라. 또는 당신이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당신이 차고 있는 시계가 집에 있는 벽시계보다 느리게 간다고 상상해 보라. 또는 당신이 산꼭대기에 올라 가쁜 숨을 고르며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 당신이 차고 있는 시계가 집에 있는 벽시계보다 느리게 간다고 상상해 보라(산꼭대기는 산 아래쪽보다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중력이 조금 작다. 그리고 중력이 작으면 시공간이 휘어진 정도도 그만큼 작아진다). 여기서 ‘상상해 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위와 같이 일상적인 환경에서 나타나는 상대론적 효과가 너무 작아서 그 차이를 도저히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을 깊이 이해하는 것과 인간의 생존능력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므로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느린 속도와 적당한 중력에서는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의 개념도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은 상대성이론으로 진화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전통적인 우주관을 철저히 붕괴시켰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우리는 사소한 입자 하나의 위치와 속도조차도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입자 하나를 관측했을 때 얻어질 실험결과를 100% 정확하게 예측할 수도 없다. 입자 하나의 미래도 예측하지 못하면서 무슨 수로 우주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말인가? … 양자역학은 수십 년 동안 정밀한 실험을 거치면서 올바른 이론임이 입증되었으므로 우리는 이 한계를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뉴턴이 제안하고 아인슈타인이 업그레이드시켰던 ‘우주적 시계’는 결국 적절한 비유가 아니었던 셈이다.
지금 당신이 내쉰 공기 속의 전자 하나가 잠시 후에 달의 뒷면에서 발견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그러나 0은 아니다). 이 확률과 비교한다면 당신이 니콜 키드먼이나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결혼할 확률은 엄청나게 크다.
전자가 X라는 위치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전자가 우리에게 발견되기 전에 ‘X 또는 그 근처’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전자의 위치를 관측하기 전에는 위치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관측되지 않은 전자는 ‘분명한 위치’라는 속성을 갖고 있지 않다. 위치에 관하여 전자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확률파동이 전부이다. 전자가 명확한 위치를 갖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보았을 때(위치를 측정하여 알아냈을 때)뿐이다. 전자는 정확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직접 들여다보지 않는 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것이다.
한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수록 입자의 속도는 그만큼 부정확해지고 입자의 속도를 정확하게 알면 입자의 위치는 대략적인 값밖에 알 수 없다.
당신이 ‘여기’에 있는 물체에게 무슨 짓을 하면, ‘저기’에 있는 물체는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리고 누가 봐도 동일하게” 흐른다는 시간의 보편성과 절대성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등장과 함께 완전히 폐기처분 되었다. 상대성이론에 의해 시간은 상대적이고 개인적인 개념이 된 것이다… 일상 생활 속에서 내가 차고 다니는 시계는 항상 균일한 속도로 가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의 시계도 내 것과 똑 같은 속도로 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아주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정지해 있는 사람의 시간과 내 시간을 비교해 보면 현격한 차이가 난다. 타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같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는 과거나 미래보다 지금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훨씬 중요하게 취급되지만 상대성이론은 우리의 직관을 뒤엎고 모든 순간들이 똑같이 현실적이라고 선언했다.
사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물체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이 아니다.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우리의 눈에 들어올 때까지는 어쨌거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물체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의 모습이다…. 게다가 우리의 눈과 주변 물체들 사이의 거리는 모두 제 각각이므로 눈에 보이는 특정 순간의 풍경은 동시에 존재하는 물체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서로에 대해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관측자들은 주어진 한 순간에 서로 다른 ‘지금’을 느끼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은 실체reality에 대하여 서로 다른 개념을 갖고 있다.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아니라 이들이 하나로 합쳐진 시공간인 것이다.
모든 사건들은 발생한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그냥 거기에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모든 사건들은 ‘과거에 일어났고 현재 일어나고 있고 미래에 일어날 예정’이 아니라, 하나의 시공간 안에서 ‘한꺼번에 존재한다.’ 이들은 시공간의 한 점을 점유한 채 영원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흐름도 없다. 당신이
우리가 겪었던 과거의 경험은 여러 장의 시간단면에 걸쳐 존재하고 있다. 마치 필름을 비추는 프로젝터처럼, 우리의 의식이 과거의 특정 시간단면을 비추면 그 부분이 되살아나면서 현재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이때 떠오르는 영상을 우리는 기억이나 추억이라고 부른다. 한 순간에서 다른 순간으로, 무언가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이 변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시공간의 어느 지점에 있건 그 순간을 겪고 있을 뿐이다.
시간의 속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이라기보다 모든 순간들이 한꺼번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얼음 덩어리에 가깝다.
- p. 243까지
생각보다 진도가 느리다, 아차하면 책의 논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건성 읽게 되는 이유 하나와
이시간까지 일을 (일요일 새벽 1시) 하는 바쁨 때문이다.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돌'은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죠 (0) | 2006.03.24 |
---|---|
우주의 구조 3 (0) | 2006.03.15 |
우주의 구조 (0) | 2006.03.01 |
파이 이야기 (0) | 2006.02.28 |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0) | 2006.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