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을 쥐었다 펴는 사이

 

 

                                                   - 이기인

 

 

1. 놓친 손

 

 

손님처럼 손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있다

손님은 둘, 서로 따로 앉아서 할 말이 많지 않았다

손은 식탁에 있던 물을 한 잔 마시기로 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방금 마신 것은 물이 아니라 눈물일 수 있다는 것은 알았기에

손등은 곧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왜 식탁에 있었던 것인지 손은 묻지 않기로 했다

손은 처음에 들어있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서 서럽게 살아온 손마디를 하나 껴안아주기로 했다

주머니 밖으로 얼마동안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머니는 부풀어오른 새의 둥지처럼 손을 품었다

 

 

2. 놓은 손

 

 

어린 손을 놓은 적이 있는 손은 물 잔을 붙들고 있었다

물은 금새 비워지고 이제 눈물이 잔을 채웠다

손은 눈물의 수위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아이를 버린 마음의 한쪽 끝이 젖어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아이를 버리고 세상과 새로이 잡은 손가락엔 금가락지가 껴져 있었다

그 손을 식탁 위에 꺼내놓아야 하는데

손은 갑자기 떨리는 심장을 붙들고 있어서 식탁 위에 꺼내 놓을 수 없었다

손은 푸른 눈물의 수위를 더 거세게 흔들어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저 손을 한번 잡아 줄 수 있을까)

그 손을 쥐었다 펴는 사이 빠져나오게 된 사랑.

 

 

 

 

* ㅋ~ 시를 읽다보면 이 시는 이래서 좋고 저 시는 저래서 좋다

나름대로 가장 좋은 시를 골라보기도 하는데 그것은 오에겐자부로의 소설이나, 토니모리슨의 소설처럼 대단한, 잘된, 훌륭한, 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가장 아끼는 시는 따로 고르게 되는데 그것은 샐린저의 소설처럼 내게 잘 맞는 그런 것이고, 이 시가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 이 시에서 맞춤표가 단 하나 쓰였고, 또 이전의 '아버지'라는 시에서도 단 하나의 맞춤표가 쓰였다 일종의 연출을 한 것인데 어느 정도의 효과를 노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이런 식의 세밀한 연출,은 일종의 종교와 같아서

 

깊이 빠져 읽는 사람에겐 하늘이 흔들릴 듯한 감동의 연출이지만 그저 무덤덤히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좀 모가 나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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