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은 모르지만

비가 내리는 별은 아마 태양계 안에는 거의 없을 것 같다.

 

별의 특징은,

반짝이는 작은 벼룩 같다고 할까,

멀리서 빛을 받아 똥을 싸듯 빛을 싸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잘은 모르지만 지구는

때때로 비가 내린다고 한다.

 

비가 내리면 하늘이 어두워지고 구름에 뒤덮여 캄캄해질 텐데

비가 내릴 때 지구도

다른 별들처럼 빛이 나고 있을까?

 

가끔씩, 그런 상상을 한다.

내가 벽에 기대 앉아 멍하니

커튼에 그려놓은 눈금자를 바라보면서

해가 1미터 90 위치에서 1미터 40 위치까지 계속 내려가는 걸

바라볼 때

내가 기댄 벽 건너편, 누군가의 방에서

누군가가 피아노를 치는 것이다.

 

이건 너무나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인데

아직까지도 내 삶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집의 옆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어쩌면 비가 내리지 않는 보통의 별들 입장에서

한 때는 열기가 100도에 가깝게 뜨거워졌다가

또 한 때는 냉기가 마이너스 40도 넘게 내려가는 그런 별의 입장에서

 

비가 내리는 별을 바라보면

그 옆집으로 이사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건조한 별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내가 지금보다 어렸을 적에는

별들마다 다 누군가가 있어서

밤이 되면 전등을 켜듯이 별에 불을 켜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나도

내가 있는 이 별의 어딘가에서

밤이 되면 불을 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그러기엔 지구가 너무 크고

너무나 충분히 전등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요즘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서류 접수도 하고, 야매 학원을 찾아가기도 하고,

보나마나 시험이 끝나자 마자 잊어버릴 것이 뻔한 필기시험 문제와 답들을 외우고,

도로주행 시험을 보다가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그러는데

 

다른 별들에서도 그러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비가 오는 날,

벽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듣지 않고

도로주행 시험을 보러 다니거나

흥미 없는 문제 풀이연습을 하거나

딱히 가슴 떨리지 않는 사람들 속으로 찾아 들어가 반가운 척 인사를 하는 것은

 

어쩐지

비가 내리는 별답지 않은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지구에서는

그렇게 비가 오는 날에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손바닥을 맞는 남자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차이는 여자도 있고

비 때문이야, 라는 핑계를 대며

또 도로주행 시험에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내일 모레 또 비가 온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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