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병사(어느 독일 병사의 2차 대전 회고록), 기 사예르, 루비박스, 2007(1판 2쇄)
어쨌든 무언가를 향해 총을 쏜다는 것은 추위와 물집으로 인한 고통을 어느 정도 보상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발은 긴 행군과 추위로 인해 처음에는 고통스럽다가 나중에는 마비가 되어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나중에 군의관이 진찰할 때 발가락 3개가 잿빛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다. 검사를 위해 벗은 더러운 양말에 발톱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서쪽 제방의 보병들은 살아남는 것보다 싸우는 게 더 중요했다. 그것이 그들과 우리의 차이였다.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말은 부패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죽음의 비율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을 때 죽음으로부터 나오는 느낌이다. 전쟁터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자는 동안 꿈조차 꾸지 않았다. 행복한 사람만이 악몽을 꿀 수 있다. 악몽이 현실인 사람에게는 잠자는 것이 죽음처럼 시간이 멈춘 블랙홀이다.
한번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는데, 이 악한들이 포로 3명의 손을 대문 철봉에 묶고 있었다. 확실히 묶였는지 확인하고는 수류탄을 그중 한 명의 코트 주머니에 넣고 안전핀을 뽑더니 자기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 러시아 포로들은 창자가 튀어나온 채 죽을 때까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낙오자는 매일 죽였다. 가장 흔한 처형 방법은 빈 탄창을 포로의 목덜미에 망치로 박아넣는 것이었다.
“버스를 타야 해. 그게 훨씬 편할 거야.”
“괜찮습니다.”
… “걸어가도 괜찮습니다. 저는 보병입니다.”
파울라와의 키스는 이마에 뜨거운 탄창을 댄 것 같았다. 나는 7~8명의 병사들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라면 순찰도 즐겁게 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젠장!
사춘기 소년은 전쟁도 소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막지 못할 것이고, 감정을 숨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독일 육군이 하는 그런 말은 그 자체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내뱉는 ‘피로’라는 단어는 내가 지금까지 전쟁터에서 경험한 ‘피로’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때 그곳에서 이 말의 의미는 건강한 남자가 며칠 만에 7킬로그램이나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했다.
전쟁 기간 동안 독일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독일군이 강간이나 절도를 하지 못하게 하면서 포로보다 못한 대우를 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죄목으로 우리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사실 아무도 자신이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알듯이 누군가 죽을 테지만 자신은 그들을 묻고 있기를 바란다.
이제 완전히 대낮이었지만 몇 시인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오전인가? 아니면 오후인가? 상관없었다. 모두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자고, 철모를 벗을 수 있을 때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 철모 하나가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옷 색깔처럼 얼굴이 변한 린드베르크는 포성을 듣지 않으려고 흙을 귀에 쑤셔넣었다.
“그것이 제군들이 싸우는 이유다. 너희들이 방어선에 있을 때나 공격 할 때도 짐승보다 못한 존재다. 그러니 용감해져라. 인생은 전쟁이고 전쟁은 인생이다.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요한 일상에서 심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보 같은 사람만이 월급 때문에 고민한다.
신기하게도 선두에 선다는 것은 사람들을 항상 자신보다 강한 적과 당당히 맞서게 한다.
마치 대머리의 가발이 벗겨지는 것처럼 지붕이 날아가면서 벽체만 남겨놓았다.
남은 건 목숨밖에 없는 소련군이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강렬한 눈길로 음식을 바라보았다.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거나 죽어가면서 신음 소리를 내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피가 더러운 신성 모독처럼 땅속으로 스며들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여자친구, 돈, 그리고 행복해지는 법을 잊을 수는 있어도 모든 것(다가올 승리 같은 기쁨조차)을 망쳐버린 전쟁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을 겪은 병사의 웃음소리는 어딘지 어색하고 절망이 느껴진다.
내 앞에 있는 병사의 등을 보고 있자니 동정심과 존경, 그리고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그가 쓰러질 때까지 때리고 싶었는데 그러면 전쟁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벨고로트에서부터 공포가 내 예상을 뛰어넘었고 삶이 너무 치열하게 전개되어 균형을 잡기 위해 일상의 어떤 부분을 버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방에는 내 것과 같은 간이침대가 가득했고 환자들이 훌쩍거리거나 신음하며 누워 있었다. 그러나 나는 호텔에 있는 마음에 들지 않는 카펫을 보듯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이 지역의 전선은 한 번도 빼앗긴 적이 없었지만 수를 놓은 레이스처럼 적이 수시로 출몰했다.
일행 중에는 신병도 있었는데, 아주 어리고 키가 컸으며 습한 지역에서 빠르게 자란 잡초처럼 가냘펐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리가 맺힌 가시철사 줄을 따라 걸었다. 아직 걷히지 않은 안개가 철사에 닿아 얼어붙었다.
본능에 의지해야 할 때 길게 설명해주어야 하는 사람은 거슬렸다.
남은 기간 동안 배정된 창문이 없는 오두막에서 5쿼트의 가짜 술을 비웠다. 보드카도 과자도 없었지만 그것이 바로 전쟁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히틀러나 국가 사회주의 또는 제3제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심지어 폭격에 파괴된 도시에 있는 배우자나 어머니, 가족들을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두려움 때문에 힘을 내 싸웠다. 죽음이란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우리는 분노에 힘없이 아우성 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수치스러운 이유로 싸웠지만 그것은 어떤 사상보다 강력하게 작용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것이다. 자신보다 훨씬 큰 인간과 마주친 코너에 몰린 쥐처럼 우리는 모든 이빨을 드러내고 주저 없이 싸웠다.
우리는 열 번 넘게 패했지만 두려움은 절망의 요새가 되어 소련군도 무너뜨릴 수 없었다.
벨고로트에서처럼 전선 전체가 바그너 오페라의 첫 장이 갑자기 일제히 시작하듯 불길에 휩싸였다.
우리는 피로로 인해 마약에 취한 듯했다.
소변을 보고 싶다고 말하면 병사들이 동상에 걸려 부은 손을 따뜻한 오줌 줄기에 내밀었는데 그로 인해 증세가 더욱 나빠졌다.
우리의 무게에 눌려 눈이 거친 소리를 내면서 갈라졌다.
우리는 총검이 무뎌져서 삽으로 베이컨을 잘라야 했다.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날 저녁, 적은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영하 40도까지 떨어진 날씨 속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몇몇 병사는 추위를 이기지 못해 기절하기도 했다. 살아남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탄창이 슈판다우포에 빨려들어갈 때 장갑을 낀 채 빈 탄약 상자 2개에 손을 쑤셔넣어서 겨우 동상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사수나 손을 사용하는 병사들은 곧 심각한 동상에 걸려 의무반으로 향했고 많은 병사들이 손을 절단했다.
사람은 전쟁터에서 더 빨리 늙는다. 신병들은 염세적인 우리의 태도를 알아차리고 이제는 전쟁이 자신들의 몫인 양 뻣뻣하게 굴었다.
우리는 기관총처럼 거칠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필사적으로 병적인 숙명론적 태도를 고수했다. 강인한 병사들 몇몇은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고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되므로 그 시점이 중요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나머지 병사들은 총구처럼 까만 눈동자를 깜박이며 최후의 순간을 늦추려고 했다.
군인이 생각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고향!’이라는 단어가 한 모금의 와인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고향.
우리는 다시 한 번 겨울에 후퇴하는 동안 그 지역 기지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죽음을 생각했다. 금이빨을 뽑기 위해 도끼로 얼굴을 찍어 벌려놓고, 끔찍한 고통 속에 죽은 병사의 머리를 죽은 동료의 뱃속에 처박아놓거나 성기를 훼손했다.
그때 우리에게는 무한한 공간만이 있었고 부츠가 먼지를 일으키면 모든 것을 덮어버리곤 했다. 우리가 땅을 가진 게 아니라 땅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었다. 전쟁 중이 아니라면 나중에 향수를 느낄 정도로 주위 환경으로부터 크고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먹을 것만 있었다면 말이다!
“배고픈 채로 죽게 되는 거야?”
할스가 크게 말했다.
“그래, 난 배가 고파. 천사가 상상도 못할 만큼 배가 고프지. 어느 순간이 되면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게 될 것 같아 두려워. 너를 삼켜 버리고 싶어, 중위.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있었는데 곧 여기서도 일어날 거야.”
나는 빗물로 가득한 큰 항아리처럼 나쁜 소식만 잔뜩 들었다. 항아리에 물이 넘치면 세상의 모든 비극을 더 이상 담을 수 없다.
아무것도 우리를 도울 수 없어, 파울라. 기도는 마치 보드카 같아. 잠시 추위를 잊게 해주지.
갑자기 옴짝달싹할 수 없는 함정에 빠진 느낌이었다. 이런 확신이 들자 부하들에게 나를 쏘라고 명령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겁에 질린 시선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것을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볼 게 없어서 그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 듯한 고요함 속에서 부신 눈을 비비며 수천 명이 비극의 언덕을 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끔찍한 외로움 속에서 수은같이 무거운 눈물을 흘렸다.
저 멀리 약간 솟아 있는 금속 십자가가 서리에 반짝였다. 그것은 마치 재앙의 심장부에 꽂힌 큰 칼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목사의 기도와 설교를 들었다.
뇌가 철모와 같은 재질로 만들어져 정지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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