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요시다 슈이치, 은행나무, 2008(1판4쇄)
‘누구든 울어!’라고 마코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지금 누군가 울어주면 자신도 곧바로 따라 울 수 있다. 울음이 터지면 분명 숨도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다.
유이치를 제외하면 왜건에 탄 사람은 노리오를 비롯해 구라미, 요시오카, 모두 50대 후반이다. 그래서 현장에 도착하기 전 아침 이동 시간에는 “어이쿠, 무릎이야” “아이고, 마누라가 어찌나 코를 골아대는지” 등의 살림 냄새가 묻어나는 이야기만 담배 연기처럼 차 안에 자욱하다.
얼굴색이 너무 나빠서 노리오는 일단 갓길에 차를 세웠다. 덮칠 듯이 쫓아오던 트럭이 비명처럼 클랙슨을 울리며 추월해갔고, 그 풍압에 왜건이 흔들렸다.
남편이 병으로 드러눕기 전에는 매일같이 아침에 세 컵, 저녁에 다섯 컵 분량의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두 남자의 위를 만족시키기 위해 15년 내내 쌀을 씻어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또다시 몸을 뒤척인 유이치는 ‘빨리 잠이나 자’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듯 냄새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땀과 체취와 샴푸가 뒤섞인, 사람을 조바심 나게 만드는 냄새였다.
솔직히 이런 유형의 여자는 딱 질색이었다. 뭔가를 기다리는 주제에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척하고, 기다리기만 할 것처럼 하면서도 실은 이것저것 요구한다.
문자로 만날 약속을 했다. 편한 장소를 묻기에 대답했다. 편한 시간을 묻기에 그것도 대답했다. 솔직히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약속을 하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후, 정말 만날 생각인가 하고 불안해졌다. 약속하는 게 너무 간단해서 가장 중요한 자기 마음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유이치는 마치 망가뜨리기라도 하듯 난폭하게 미쓰요의 몸을 애무했다. 그리고 마치 다시 고치기라도 하듯 힘껏 끌어안았다.
망가뜨렸다 고치고, 또다시 망가뜨렸다 고쳤다. 미쓰요는 자신의 몸이 망가진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망가져 있었던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요시노가 몇 번째 리피트 버튼을 누르려고 했을 때일까, 마스오는 문득 ‘이런 여자가 남자한테 살해당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푼돈을 모으고, 휴일에는 명품 매장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본다. ‘나의 본모습은…… 나의 본모습은’ 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3년쯤 일하고 나면 머릿속에 그렸던 자신의 본모습이 실은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후에는 자기 인생을 거의 포기하고, 가까스로 찾아낸 남자에게 미래를 통째로 던져버린다. 그렇게 통째로 걸어본들 남자 쪽은 당혹스러울 뿐이다. 내 인생 어떻게 해줄 거야? 이번에는 그 말이 입버릇이 되고, 서서히 격화되는 남편에 대한 불만에 반비례해 자식에 대한 기대가 팽배해간다. 공원에서는 다른 엄마들과 경쟁하고, 어느새 친한 그룹을 만들어 누군가의 험담을 늘어놓는다. 자기 자신은 눈치 채지 못하지만, 친한 사람에게만 의지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의 험담을 늘어놓는 그 모습은 중학교, 고등학교, 단기대학에서 줄곧 보아온 자신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마스오가 요시노 씨를 고갯길로 걷어찰 때 다리에 느껴진 감촉, 걷어차여 쓰러질 때 요시노 씨가 손바닥을 짚은 지면의 차가움, 그리고 범인에게 목이 졸릴 때 요시노 씨가 쳐다보았을 하늘과 범인이 조이는 요시노 씨의 목의 감촉 같은 게 또렷하게 느껴졌어요.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밑변의 돌 한 개가 없어지는 거로구나 하는.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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