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의 도시들, 코맥 매카시,
전차가 끊긴 데다 차도 사람도 없어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젖은 궤도가 초소를 지나 다리까지 뻗어 있어 커다란 수술용 겸자가 서로 다른 연약한 세계들을 죄어 물고 있는 듯했다.
해 뜰 때부터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해서 금쪽 같은 1달러를 버는 삶이라. 정말 멋지지 않아? 나는 이런 삶이 너무 좋아. 너도 그렇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으면 차선책이 아니라 최악의 선택을 하는 인간이 있지. 엘턴 형은 조니 형도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아마 맞을 거야. 하지만 형은 그 여자를 정말 사랑했어. 어떤 여자인지 알면서도 개의치 않았던 거야. 형이 정말 눈이 멀어서 제대로 못 본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거지.
결혼을 하다니, 젠장. 구두조차 견디지 못하던 사람이.
야생마를 길들인 적이 있나?
네. 하지만 훈련시키기가 쉽지 않죠.
왜?
사람들은 야생마를 훈련시키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저 길들이기만을 바라죠. 우리는 말 주인부터 훈련시켜야 해요.
달란 한 벌뿐인 양복 차림으로 전쟁에 간 사람이 수천 명이었지. 결혼 할 때 입은 양복을 죽을 때도 입은 게지. 거리의 뒤집힌 수레나 짐짝 뒤에서 사람들이 코트와 넥타이와 모자를 차려입고 서서 분노한 회계사처럼 총질을 해 댔지.
선반에 늘어선 병 뒤로 꼼지락대던 바퀴벌레 한 마리가 유리창을 오르다 제 모습을 보고 얼어붙었다.
지난 세계와 다가올 세계. 그들의 공통된 무상함. 무엇보다도 아름다움과 상실은 같은 것임이 뼛속 깊이 새겨진 앎.
뉴멕시코의 방목지에서 겨울을 보낸 적이 있어. 그러고 나면 자기 자신에 대해 상당히 잘 알게 되지. 하지만 두 번은 할 짓이 못 돼.
어릴 때는 누구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 그러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 그중 몇 가지를 접게 돼. 그러다가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물러서고 말지.
밤 장사를 나온 행상들이 비포장 모랫길 위로 수레를 끌고 가거나 수레 앞에 매인 자그마한 당나귀를 몰았다. 리인야(자앙작)라고 외치며. 케로시이이나(드응유)라고 외치며. 어둠에 잠긴 거리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그들은 오래전 사라진 아가씨를 찾아 헤매는 늙은 구혼자처럼 외쳐 댔다.
기다려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는 낡은 레이스 커튼을 모아 쥐고 거리의 삶을 내다보았다. 누구라도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면 먼지 낀 허위의 유리창 너머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능히 짐작했으리라.
그날 밤 그는 그녀가 한 말과, 그녀가 하지 않은 말을 모두 꿈에서 들었다.
노인은 여전히 모자를 쓴 채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1867년 텍사스 동부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 이 고장으로 왔다. 그가 살아가는 동안 이곳은 기름등과 말과 마차에서 벗어나 제트기와 원자폭탄의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그것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는 못했다. 사실상 그가 결코 익숙해질 수 없었던 것은 딸의 죽음이었다.
늑대를 독살시키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 30년 넘게 늑대 우는 소리를 못 들었어. 어디 가야 들을 수 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런 곳은 이제 이 세상에 없는지도 모르지.
당신 친구는 열정에 사로잡혀 분별을 잃었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거요. 자기 머릿속에 이야기 하나를 갖고 있지.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그 이야기 속에서 그는 행복할 거요. 그 이야기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아시오?
그야 당신이 더 잘 알겠지.
그 이야기의 문제는 진실이 아니라는 거요. 사람들은 세계가 어떤 식이며, 그 세계에서 자신이 어떻게 돌 것이라는 생각을 나름 갖고 있지. 기실 세계는 전혀 다른데도,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는 세계를 꿈꾸지. 어떻게 생각하오?
어쩌면 그럴 수도. 어쨌든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도 있는 법이오.
그런 사람은 없소. 그저 잠시 얻었다가 다시 잃을 뿐이지.
네가 미쳤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 같아? 천만에. 아니야. 너는 광기의 역사를 다시 섰어. 네가 미친놈이면 정신병원에 갇혀 문 아래로 밥 받아먹는 인간들은 전부 풀어 줘야 해.
결혼을 하게 되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림없는 착각이야.
내가 어디가 잘못되었고, 그걸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구장창 듣고 싶다면 처갓집 식구만 집 안에 들이면 돼. 그러면 완벽한 보고서를 듣게 될걸. 내 보장하지.
잠시 후 그는 하느님을 믿지만, 인간이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는 하느님은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니라고 했다.
언젠가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중에는 자기가 늘 꿈꾸던 것을 기어이 얻어 낸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군.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말을 타고 나아가고 싶어요. 과거의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되돌아가려면 영원이 걸린다 해도 계속 앞으로 가겠어요.
비 내리는데 길에서 뭘 하고 있었나?
비에 젖는 것 말고요?
비에 젖는 것 말고.
내가 몇 수 접어 주지. 싸움을 별로 안 해 봤을 테니. 싸움에서는 보통 마지막으로 말하는 자가 진다는 걸 명심하게.
그는 갈라진 배를 피투성이 손으로 움켜잡았다. 자신이 육신을 떠나지 않도록. 그럴 것만 같은 순간이 수시로 왔다. 온몸을 부둥켜안았지만 영혼은 너무나 가벼워 몸의 출구에서 주저하듯 서성였다.
살려 주소서. 살릴 가치가 있다고 여기신다면. 아멘.
거기 누워 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요. 내 삶은 끝나 버렸죠. 그게 안심이 될 지경이었어요.
그게 뭐죠?
미신요?
네.
글쎄요.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믿는 것 아닐까요?
내일처럼요? 아니면 어제처럼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자기 존재를 이야기하는 시인이죠.
내가 그를 꿈에서 보기 전에 여행자는 어디 있었을까요?
꿈에서 우리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죠.
그렇군요.
그렇다면 앞으로의 일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글쎄요.
모든 사람의 죽음은 다른 모든 사람의 죽음을 대신한 것이죠. 죽음은 예외 없이 찾아오기에 우리 대신 죽은 이를 사랑하는 것 말고는 죽음의 공포를 싸워 이길 방법이 없죠.
안주인이 그의 손을 다독였다. 손마디가 툭 나오고, 밧줄 흉터가 새겨지고, 태양 볕과 세월에 점투성이가 된 손을. 심장과 이어진 밧줄 같은 정맥들. 사람들이 충분히 읽어 낼 수 있는 지도가 담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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