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박물관, 오르한 파묵, 민음사, 2010(1판1쇄)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삶은 나를 내가 경험했던 것에 관한 인류학자로 만들 것이었기 때문에,
스토리는 키스를 위한 핑계였다.
“이봐, 곡괭이 발톱!”
이런 상황에서는 말이 아니라, 태도와 슬픔의 진정성이나 힘이 아니라, 주위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재능이 중요하다. 담배가 그렇게 사랑받는 것은 니코틴의 힘 때문이 아니라, 이 공허하고 무의미한 세상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인생에서 진짜 문제는 ‘행복’이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하다. 대부분은 이 사이에 있다.
“영리한 사람들은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며,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알지. 그런데 나중에는 바보들만 행복해져.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지?”
술을 많이 마셨을 때처럼, 내가 나의 유령처럼 느껴졌다.
행복의 진정한 원천이 비밀스러운 연인이지만, 마치 아내와 가족들 때문에 행복하다는 듯 행동하는 남자들처럼 나도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내가 시벨 때문에 무척 행복한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을 짧은 순간 동안 확연하게 느꼈다.
오로지 한 사람의 품에 안기고 나서야 울음을 그치는 아기처럼, 내 마음은 부드러운 벨벳같이 깊은 행복의 고요 속에 파묻혔다.
영혼은 ‘우리 종교가 가르치는 대로’ 물론 있지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들과 대화하려는 것은 우리 종교에 위배되며, 일종의 죄라고 했다.
정오의 햇빛이 나무 그늘마저 달구고 있을 때,
다음 날도 내 배의 통증은 전혀 가시지 않았고, 계속해서 켜져 있는 검은 전등처럼 고통이 나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느낌이었다.
“퓌순은 없나요?”
내 입안에 있던 안달하는 새가 이렇게 말했다.
나의 고통은 극에 달해 나를 장악해 버렸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후 혼자 앉아 있으면, 작은 우주선에 실려 우주의 무한한 어둠 속으로 보내진 개처럼 외로울 것임을 바로 깨달았다.
세상과 인생의 모든 것에는 어느 때고 점을 칠 수 있도록 신이 보낸 신호로 가득했다. ‘처음 지나가는 빨간 자동차가 왼쪽에서 오면 퓌순에게서 소식이 올 것이고, 오른쪽에서 오면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라며.
“우리 관계에서처럼, 사랑은 끼리끼리의 예술이야. 부유한 처녀가 단지 잘생겼다고 관리인 아흐메트 씨나 건설 노동자 하산 씨를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을 터키 영화 말고 다른 데서 본 적 있어?”
하지만 발걸음을 내디디며 조금씩 퓌순에게서 멀어질 때마다 내 가슴에서 한 부분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추쿠르주마 비탈길 위로 올라가면서, 내 영혼이 뒤에 두고 온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뼛속에서 발버둥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즈음, 스스로 아편 성분이 있는 액체를 분비하며 잠에 빠지는 희귀한 고비 꽃처럼, 내 머리가 스스로 분비해 냈던 이런 상상들을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것만이 행복이다.
“행복은 너의 것이 되고, 추억은 나의 것이 되길!”
“너는 한때 나의 연인이었지…….”
그때 퓌순은 “난 밤의 이 정적을, 그리고 지붕을 걸어다니는 고양이를 아주 좋아해.” 라고 했다.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처음으로 소금 통을 만들고, 그다음에 그것을 본따서 주형을 만들어 여러 나라에서 대량으로 생산을 하면, 몇 년 후에는 수백만 개의 소금 통이 남지중해와 발칸 지역에서부터 퍼져 나가 수백만 가정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소금 통이 이렇게 많은 지역으로 퍼져 나가는 것은, 철새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매번 같은 경로로 이동하는 것과 유사한 수수께끼이다. 그 후 다른 소금 통이 유행하면, 마치 남서풍이 바닷가로 물건들을 휩쓸어 오듯이, 새로운 소금 통이 예전 것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삶의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낸 물건들과 맺었던 감정적인 관계를 인식조차 못한 채 잊어버린다.
진정한 박물관은 ‘시간’이 ‘공간’으로 변하는 곳이다.
파묵은 『순수 박물관』 출간 후, 한 인터뷰에서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사랑은 교통사고입니다.”라고 답했다.
『순수 박물관』은 파묵의 집필 철학인 ‘바늘로 우물 파기’가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파묵이 이 소설을 집필할 때 그의 여름 집필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된 파묵의 책을 비롯한 수많은 책이 가득한 전망 좋은 그의 집필실 창문에는 “네시베를 관찰해!”라는 글귀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또한 이후에 겨울집필실에 갔을 때, 책상 옆 메모판에는 “순수의 순수를 잊지 마!”, “항상 박물관의 물건들을 생각하며 써!”, “귀걸이를 잊지 마, 귀걸이!”, “자리에서 절대 일어나지 말고, 쉬지 말고 써, 자리에서, 책상에서 절대 일어나지 마!” 등등의 글귀가 무수하게 붙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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