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아이들, 페터 회, 뿔, 2010(1판2쇄)
카린 에뢰가 고릿적부터 내려오는 법칙을 하나 가르쳐준 적이 있다. 물체 표면을 도금할 때는 100퍼센트 순금으로 씌우는 것은 좋지 않다. 가장 효과가 좋은 건 60퍼센트가 약간 넘는 금을 씌웠을 때다. 중용의 법칙을 변용한 형태다.
시간과 처벌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적발된 규칙 위반 중에서 단지 반 이상만 처벌되었다.
폭력의 중용 법칙 같은 것이다.
“아니, 어느 정도 겁에 질려 있으면 처벌받지 않는 것만도 일종의 자유처럼 여기게 되지.” 그애가 말했다.
“정신을 멍하게 비우면 시간은 사라져 없어져.”
카타리나는 시계가 없었고 아우수스트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시계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내게 시계를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나중에는 갖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일의 근원이었다. 시간이 인생을 조인다. 일종의 연장처럼.
학교에선 항상 수없이 기도하고 찬양했다. 하지만 우리는 신 자체에 가 닿을 노력은 하지 않았다. 신은 언제나 빌이나 왕립 고아원 원장, 히멜비에르 고아원 감독관하고 너무 가까웠다. 너무 가까워서 진심으로 기도할 수가 없을 정도로.
플락케담은 튜브를 짜듯이 아이들을 깨웠다.
한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게 가능할까?
우리는 시간이 지나간다고 말한다. 날아간다고도 한다. 강과 같다고도 한다. 우리는 시간을 마치 방향과 길이를 가진 존재처럼 묘사한다. 공간을 묘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은 공간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시간을 생각할 때는 그 흔적 안에 항상 고통이 수반된다.
어쩌면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고통이 먼저 오는지도 모른다. 고통은 중요한 것이기에 사람은 항상 그걸 설명해 버리려고 한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은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고통을, 시간을 이용해 설명해 버리려 한다.
시간을 측정하는 작업에 사람들이 매료된 것은 시간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다른 요소에 지배받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매료된 대상은 바로 시계였다.
시계의 규칙성은 우주의 정확성에 관한 하나의 은유였다. 신의 창조적 업적의 정확성에 대한 은유. 시계야말로 가장 첫번째이자 최고의 은유였다.
시계는 예술 작품이었고, 실험실의 산물이었고, 하나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어느 시점이 되자 이런 개념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이 되자 시계는 더 이상 질문이 아니었다. 대신 시계는 대답이 되었다.
“’더 나은 것’ 따위는 없어. 두번째 것이 학교의 계획에 더 잘 들어맞을 뿐이야.”
학교는 어떤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걸 카타리나는 어떻게 알아냈을까?
놀이터에 나갔을 때 아이가 철로 침목 위로 올라갔다. 땅 위로 1미터쯤 되는 높이에 올라선 듯 싶었다. 거기서 나를 불렀다.
“봐! 봐!”
아이는 주목을 끌기를 원했다. 단지 쳐다봐 달라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는 주의를 끄는 대신 평가를 받았다.
“어머, 너 참 똑똑하구나.”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데에 딱히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 자신도 자주 평가를 받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삶을 시작하려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대답이었다.
“내일은 어디에 있어?” 딸아이가 내게 한 질문이다.
입맞춤은 시간을 앗아 갔다. 나는 그 입맞춤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누구라도 내게서 영원히 빼앗아 갈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순간 두려움은 송두리째 사라졌다.
“네가 꼭 알아주었으면 하는 얘기가 있어.” 내가 말했다. “우리가 만난 뒤로, 처음 같이 변기 위에서 라디에이터에 기대앉았던 이후로, 난 한 번도 완전히 외로웠던 적이 없어. 네가 나를 떠난 후에도 말이야. 그전에는 내 삶에 아무것도 없었어. 하지만 누군가 내가 따뜻한 물에 샤워할 수 있도록 냉수 샤워기 아래서 오래 견뎌준 덕분에, 나는 다시는 진정으로 외롭지 않게 되었어.”
“배고파서 그래. 그래서 잠을 잘 수 없는 거야. 배고픔은 파도처럼 밀려오지. 일단 밀려오면 느낄 수밖에 없어. 다른 건 생각하지 마, 먹을 것도 생각하지 마. 그냥 빛처럼 환히 인식하며 집중해서 바라봐.”
“이제는 더 컸잖아. 시간이 흐르고 지남에 따라 그런 기회가 생겨. 고통이 더 줄어들지는 않지만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지.”
“’네 자신을 구해.’ 이게 훔룸의 마지막 말이었어. 그 앤 우리 둘 다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렇게 되면 학교 입장에서는 한번에 오물을 너무 많이 방출해 버리는 셈이 되니까.”
“어쩌면 부모를 잘못 만나는 수도 있을 거야. 태어나지 말아야 할 곳에서 태어난 것일 수도 있을 거야.”
“시간은 절대로 자연법칙이 아니야.” 카타리나가 말했다. “시간은 계획이지. 집중해서 시간을 인식하면, 아니 그것에 닿기 시작하면, 시간은 분해되어 버려.”
나는 카타리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내 혀가 그 말 주위에 가 닿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정신이 나간 아이들이었다. 아우구스트, 카타리나, 그리고 나. 이것으로 모두 설명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아이들이라는 게 바로 그 설명이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내 안으로 가라앉았을 때, 혹은 죽음이나 항복, 무아지경에 이르렀을 때, 여기 실험실의 고요 속에 앉아 있을 때, 시간은 내게서 떠나갔다. 그때 영원이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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