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 계보학, 권혁웅, 창비, 2010(초판8)

 

 

 

 

 투명인간2

 

 

 할머니 천식이 또 시작되었다 지겨워,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한쪽 구석에 웅크려 앉아 자지러지는 할머니의 굽은 등이 보였다 그러게, 담배 좀 고만 태우시지…… 투덜대다가 놀랐다 할머니는 십사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할머니는 어디서나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쇳물을 쿨럭이며 뱉거나

 비 듣는 시멘트 기왓장 아래 누워

 낙숫물을 흘려대기도 했다

 

 우리는 할머니를 화장했다 선산 이곳저곳에 뼛가루를 뿌렸다 실개천이 할머니를 받아안고는 멀리 모시고 갔다 그리고 우리는 문을 닫고 잠들었던 것인데,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그 먼 본적지에서 할머니가 돌아왔다

 

 하루구에 물을 버리면 꾸르륵,

 소리를 내며 할머닉 빠져나갔다

 머리 감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빙빙 돌리며, 데려가려고 했다

 

 내가 어머니, 하고 부를 때마다

 할머니가 돌아보신다

 

 

 

 

 

 

 

 

드라큘라

 

 

 넓은 마당 한구석에 관 짜는 집이 있었다 옻칠한 관이 틀니처럼 가지런히 쌓여 있던 곳, 늘 어두워 지나는 이가 씰루엣으로만 보이던 곳, 거기가 적금 붓듯 오래된 과거를 쟁여넣는 데라는 걸 내가 알았을 턱이 없다

 

 내가 좋아한 것은 대패가 나무 위를 건너가는, 그 사각사각하는 소리, 대패가 엿판을 지나갈 때 얇게 저며져 나오는 엿처럼 달콤하고, 이태리타월이 살결을 지나갈 때 검게 줄지어 나오는 때처럼 시원한 그 소리

 

 거기가 곗돈 붓듯 오래된 미래를 모아두는 데라는 걸 내가 알았을 리가 없다 내가 아는 것은 오후 두시에서 세시까지 좁은 창문을 넘어오던 깡마른 햇살, 햇살을 타고 먼지가 되어 날아오른 할머니, 용구 아빠와 용구

 

 그이들은 그리로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 혹시 모른다, 밤이 되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비죽 나온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았을까 틀니처럼 반짝이는 웃음을 웃지 않았을까 대패 지나는 소리로 서걱서걱, 얘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우리가 그곳을 떠난 후에 관 짜는 집도 사라졌다 할머니도 선산으로 떠나시고 용구도 제 아빠를 무등 타고 어딘가로 이사 샀다 지금 서울엔 마늘 시세가 똥값이다 십자가는 동네마다 있다 그리고 나는 아파트에 산다

 

 그분들처럼 이 동네 사람들도 밤이 되면 층층이, 나란히, 눕는다

 

 

 

 

 

 

 

목련의 알리바이

 

 

 오늘, 목련이 모두 졌다 오래된 신발처럼 변색했다 신발은 흔적이다 너는 여기에서 증발했다 뒤꿈치 바깥이 깎인 것은 너를 지탱해온 신발의 기억, 신발은 길을 끌고 천천히 이곳에 왔다 오늘 너는 신설(新設), 건국(建國), 성수(聖水) 등을 짚어 왔고 주렁주렁 달고 왔고 그리고 목련이 졌다 너는 여기에서 증발했다 목련은 가지를 끌고 와서는, 가지 끝마다 자리를 잡곤 했다 가지들이 노선(路線)처럼 산만했다 그 무성한 신발들이 다 떠나갔다 너는 여기에서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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