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 스티븐 제이 굴드, 사이언스북스, 2010(1판15쇄)
나의 동료들이 NBA의 한 선수가 던진 슛을 한 시즌 이상 분석해 봤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났다. 첫째,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킬 확률은 첫 번째 슛을 성공시킨 후에도 여전히 올라가지 않는다. 둘째, 연속 득점은 결코 무작위적으로 동전을 던지는 표준 모델의 기대값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전 던지기를 32번 시도할 때 적어도 한 번은 연속해서 다섯 번 앞면이 나올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농구 선수에 대해서도 연속 득점의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조던이 자유투를 제외한 모든 슛의 60퍼센트를 성공시킨다면 20번의 시도에서 한 번은 여섯 번 연속 득점할 수 있다(0.6X0.6X0.6X0.6X0.6X0.6≒0.047, 4.7퍼센트, 약1/20). 마이클 조던이 실제로 스무 번의 시도에서 여섯 번 연속 득점을 했다면 이것은 당연한 것이지 어떤 마술이 벌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크 트웨인과 디즈레일리가 세 가지 종류의 날조라고 한 유명한 말(거짓말, 터무니없는 거짓말, 통계)과 똑 같은 의미에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집단이 정말로 성공해서 그들의 계통수가 수많은 가지를 가지고 있고, 또한 그 모든 가지가 동시에 번창하고 있으면 어떤 경로도 특별히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의 진화를 묘사하거나 이해하는 특정한 방법도 있을 수 없다. 진화의 가지들이 멸종에 의해 떨어져 나가고 오직 한 계통(예전의 풍부함에서 나온 한 조각, 이전의 나무에서 나온 가지)만이 살아남았을 때 우리는 이 미미한 잔재를 유일한 정점으로 보기 쉽다.
진화의 <경향>이라고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실패한 집단의 이야기이다. 다른 가지는 다 떨어져 나가고 하나만 남은 나무의 이야기이다.
자연선택의 기본 이론은 전반적인 진보에 대한 말을 하고 있지 않으며 전반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 문명과 박테리아 화석에서 시작된 화석 기록에서 보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들이 한 목소리로 진보를 진화론의 핵심에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털이 난 메머드가 털 없는 코끼리보다 전 우주적으로 더 낫거나 전반적으로 더 우월한 것은 아니다. 매머드의 <향상>은 전적으로 기후가 추워진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이다(털이 거의 없는 코끼리 조상은 따뜻한 지역에서 여전히 더 유리하다). 자연선택은 눈앞에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한 적응만을 낳을 수 있다.
자연선택은 오로지 각 개체에 의해, 개체를 위해 작동하므로 모든 정신과 물질적 자질은 완성을 향해 진보되어 갈 것이다.
단호한 주장이다. 다윈은 신체의 모든 특성뿐 아니라 정신의 모든 특성까지를 포함한 <모든> 자질이라고 했다. 자연선택이 진보라는 해묵은 도그마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여 놓고는(앞에서 설명한 대로) 어떻게 여기에서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진보에 관한 다윈의 명백한 모순성은 과학사가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논문을 폭발적으로 발표하게 했다. 책 한권이 온통 이 주제를 다룬 것도 있다(Richards, 1992).
윌트 휘트먼Walt Whitman의 「나의 노래Song of myself」에 나오는 아름다운 시구..
내 말이 모순되나?
좋아 그럼, 모순되자,
(나는 크고, 수많은 것을 포괄하지).
진보에 대한 주장은 경향을 어디론가 움직여 가는 하나의 실체로 생각하는 진부한 사고의 전형적인 예다.
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장 복잡한 생물의 정교함이 증가하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단, 이렇게 극히 제한적이고 사소한 사실을, 진보가 생명 역사의 추진력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에 맹렬히 반대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뻔뻔한 주장이야말로 개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본말전도의 가소로운 것이며, 소소하고 주변적인 사실을 중요한 흐름과 원인으로 격상시키는 말도 안 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생명 복잡성의 평균값이 증가했을 수 있지만, 4장에서 설명했듯이, 평균값은 몹시 기울어진 분포 곡선에서는 중심 경향성을 나타내는 척도로 적당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최빈값이 더 적합한 척도가 될 것이다. 최빈값에 해당하는 박테리아는 언제나 생명의 성공을 잘 대변해 왔다.
생명이 성공적으로 팽창해 감에 따라 분포 곡선은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갈 수밖에 없다.
분포 전체의 꼬리에 불과한 최대값으로 분포 전체의 성질을 규정하려는 것은 근시안적인 경향이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창자 속에 갖고 사는 대장균의 수는 지구 위에 살았던 인류의 총수를 가볍게 넘어선다. 그리고 대장균은 인간의 정상적인 내장 속에 존재하는 <생물상> 중의 하나일 뿐이다.
월즈비의 글은 이들 심해 박테리아가 레이 브레드베리의 유명한 소설 제목 <화씨 451도>보다 높은 온도에서 살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화씨 451도(섭씨 233도)라는 것은 종이가 자연 발화할 수 있는 온도이다(그리고 급진적인 문헌을 소각함으로써 언론 통제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온도).
심해저는 수압이 엄청나기 때문에 섭씨 100도를 넘는 온도에서도 물이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가능한 것이다. 생명은 액체를 필요로 할뿐, 반드시 온도가 낮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의 시도 역시 봉투 뒷면에나 하는 비공식적인 계산이었다.
태양계 밖 어딘가 분명히 존재할 우리보다 진보된 문명들이 왜 지구에 접촉하려 하지 않는가? 하는 엉뚱한 질문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에 대한 여러 대답 중 하나에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그렇게 행성간 또는 은하계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을 발전시킨 사회는, 기술적 역량이 사회적 또는 도덕적 제약을 뛰어넘어 파괴를 부르는 우기의 시대를 잘 극복한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 접촉해 오는 외계 문명이 없는 것을 볼 때 그런 위기를 아무런 상처 없이 극복할 수 있는 사회가 없는 것이다.
우수성은 특정한 점이 아니라 넓게 퍼져 있는 차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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