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궤도1, 배명훈, 문학동네, 2011(초판발행)
“이해를 잘 못하신 것 같군요. 나니예 계획은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까지도 체제 수준에서 보장할 생각입니다. 혹시라도 나니예가 낙원이 아닐 경우 뒤집어엎어도 막지 않을 겁니다.”
손에 든 서류철을 건네며 김회장이 말했다. 기자가 물었다.
“그게 뭔데요?”
“신이요. 이건 신이 될 겁니다.”
“신을 만들겠다는 겁니까?”
“물론 아무나 만질 수 있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일 높은 선반 위에 올려둘 거거든요. 쉽게 올라갈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간절히 원한다면 결국은 닿을 수 있게 해야겠죠.”
“이것까지도 나니예 계획에 포함된 건가요?”
“아닙니다. 아직은 이걸 구현할 기술이 없습니다. 나니예 프로젝트보다 늦게 지구를 출발할 예정이에요.”
언덕 아래에는 조그만 수도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젊은 수사 한 사람이 문을 나섰다. 나물이라는 이름의 수도자였다. 그는 수도원 뒷문에서 성전까지 이어지는 돌계단을 따라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언덕을 올라갔다. 그러면서 한창 연구중인 신의 공전궤도에 대해 조용히 묵상했다. 신께서 사도들의 이론에서 예측한 범위를 벗어났을 가능성과 그 결과에 관해서였다.
거기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을 끈질기게 기다리면서 느끼는 절망 같은 게 빠져 있었다. 믿을 만해서 믿는 건 종교가 아니다. 그건 단순한 호기심일 뿐이다.
나니예에서는 밤하늘과 우주의 경계가 지구에서보다 훨씬 더 모호해서, 해가 지면 마을 바로 위까지 우주가 밀려내려오곤 했다.
나물이 보기에 이론신학회는, 신이란 결국 증명할 수 없을 때 가장 완전하다고 주장하는 바보들의 모임이었다.
용서를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그 여자를 용서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한 번씩 상대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갔으니까요.
괜찮냐고 묻더군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반가웠나요?”
신을 대면한 것만큼 반가웠습니다.
그는 폭격기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늘 가까이 있었지만 닿을 수 없었던 누군가에게.
미은은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정말이지, 눈앞에 있는 공중요새만이 아니라 둘 사이에 가로놓인 그 어떤 장벽이라도 뚫어버릴 기세로 날아가고 있었다. 뒤를 바짝 뒤쫓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기분이 느껴질 정도로 빠르고 강렬한 마음의 곡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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