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

도시인의 삶에서 이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이토록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곳

대부분 좋아서 머무르지는 않는 곳

사람 대신 스마트폰이 나란히 줄 서 버스가 올 때까지 사람을 보관해 놓는 곳

에서 새벽 6시부터 1시간이나 버스를 기다렸다

평소 가지 않던 루트로 모험을 해보자, 가 잘못이었다

처음 가보는 환승 정류장에 내리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버스가 오기는 했는데 만석이었다

다음 차도 만석, 그 다음 차도 만석.

예전에 교통사고가 났던 날과 흡사한 기분이 느껴졌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났는데 대체 왜 만석버스인가.

짜증과 분노 어지럼증, 그로 인한 연쇄적 틀린 선택

바보와 사고와 후회로 가는 길이 보였다

빗물에 젖은 안경을 통해 교통앱을 다시 들여다봐도 인근에 다른 노선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일단 우산이나 챙길까

어차피 늦은 거 그냥 오전 반차를 쓸까

아 씨발 사표를 낼까

환상처럼 수원 시내 펼쳐진 모든 버스정류장이 그려졌다

서울, 경기권 내 모든 버스정류장이 점이 되어 펼쳐졌고

철가루가 되어 그 수천 개 점에 각기 빨려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버스정류장에 오는 사람들의 목표는 가장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것

가장 적게 이곳에 머무르는 것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나의 하루를 저주하지 않게 되는 것

마침내 네 좌석 빈 버스가 도착했고 젖은 신발로 난간을 올랐다

뿌연 창가로 멀어지는 아주대학교입구 3007번 버스정류장

겨울이어서 어두웠고 어두운 정류장 위로 비가 내렸다

뉴스에선 호우주의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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