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4권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시간 역시 장소가 될 수 있다, 모네오.”

 

 모네오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영화 연출에서 봄직한 경험을 했다.

내 의식이 내 삶 중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순식간에 이동, 다시 또 다른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이동, 또다시 이동, 이동, 이동….

 

 듄의 황제가 한 말에 내 의식이 반응하기도 전에 내 육체(뇌)가 먼저 반응해버린 것이다.

그 말에 반응해 내 의식 속 어떤 때로 빠르게 이동 & 이동해버린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숨겨 놓은 비밀을 들킨 것 같은 화들짝.

또는 그러고보니 그 장소들이 그대로 잘 있나 되짚어보는 동작 같았다.

 

사실 기억이란 일방향적 폭력이라서,

내가 저장해 놓은 과거의 시간들이 잘 있는지 훑어보더라도 확인할 길은 없다.

그 중 몇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더라도 내 기억이 그걸 놓쳐버린 이상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 다시 알 길이 없으니까. 죽을 때까지도.

 

사실 오늘 하루 중 대부분은 장소가 되지 못할 시간들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10년치 기억이 지나고 나면 단지 그 회사에 있었던 시간으로 축약되어

한 페이지도 채 안 되는 요약본으로 기억되겠지.

그리고 그 요약본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중인 오늘에서 발췌된 것이 아니라,

회사를 다니던 때의 나를 회상할 미래의 내가 재정리(또는 재해석)한 요약본일 테고.

 

내가 지나온 시간의 대부분이 장소가 되지 못한 것처럼 

내가 지나온 대부분의 장소가 시간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분명 과거 언젠가 한라산을 오르고 내렸고, 설악산 대청봉을 일 월에 올랐으나

그게 몇 년도였는지 내가 그때 몇 살이었는지, 몇 일, 무슨 요일, 무슨 시간이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더구나 그 거대한 한라산, 그 거대한 설악산 줄기의 어디를 디뎠는지야.

 

그래도 지금보다 어렸을 때 많은 것들이 신기할 때의 경험들은 흐릿하게나마 시간과 장소를 차지하고 있지만 서른 넘어서의 경험들은 출근길 안개와 같다.

분명 언젠가 출근길에 안개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날이 채 지나기도 전에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나는 분명 확신할 수 있다.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내 안에 장소가 되지 못할 것이고 오늘의 기분 오늘의 대화 오늘의 작은 스토리들 중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일부러 홍대앞에 나가 타투를 하나 더 하거나(오늘 날짜를 적어 넣을 수도 있겠지) 일부러 사건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은 그렇다. 

평범한 목요일 오전 11시 52분. 지금부터의 매초가 삶의 순간이지만 기억으로서는 이미 죽었음을 안다.

턱 벌리고 멍하니 있을 때 나는 아직 스물인데, 시간상으로는 사십 년이 훌쩍 지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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