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아.

바보가 뭔지 알아?

자신이 무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계속 무얼 어째 보려다가 웃음거리가 되는 거야.

예를 들면 이런 거야.

 

 

 

10에 문자를 받는다.

좋아하는 사람이 술 취했다는 문자 내용이다.

그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

원래 잘 아는 사람들과 있었으니, 별 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한다.

별 일이 있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술 처음 마시는 사람도 아니고, 억지 술자리도 아니니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다.

괜찮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난 이 사람이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납치된다거나, 길바닥에 쓰러진다거나,

그런 것들을 걱정할 근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여기저기 술 취해 울거나, 술 취해 업혀가거나, 술 취해 인사불성인

여자들은 본 적은 제법 있다.

그러므로 이 사람 또한

인사불성인 모습으로 울거나, 누군가에게 업혀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내가 어쩔 방법은 없다.

연락은 되지 않고, 아마도 굳이 내게 연락하려는 마음도 없었으리라.

보통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어진다.

안 그런 사람도 있다.

연락하고 싶더라도 나 같은 사람은 참는다.

그럴 기미가 보이면 배터리를 빼서 어딘가 몹시 귀찮은 곳에 넣어둔다.

그러나 보통은, 보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은 딱히 내게 연락이 없으므로

나더러 그리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므로, 신경 써주길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신경 쓰더라도 뭐가 어떻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니까, 귀신같이 그 근처를 배회하다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줄 수는 없다.

그러니까 그냥 자면 된다.

하지만 혹시 연락할 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직 내가 필요하지 않더라도, 도움을 요청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아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이고, 도움이 필요할 경우

이들 중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다.

도와줄 사람들이 아니라면, 맘 놓고 완전히 취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설사, 도와줄 사람들이 아닌데도 맘 놓고 취해버리더라도

그게 강제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면

그걸 내가 말릴 권한은 없다.

보시다시피 연락이 없지 않은가.

알아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냥 자면 될 것이다.

사실은 아까부터 자려고 하고 있다.

지금 시간은 새벽 4.

아직도 술을 마시는지 집에 들어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어도 대답이 없을 것이므로 결국 나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궁금해 할 필요 없이 그냥 자면 된다.

사실은 아까부터 자려고 하고 있다.

잔 듯 만 듯 깨어난다.

아침이다.

마침내 연락을 받는다.

내가 좋아하는 이 사람은 멀쩡하게 집에 잘 들어갔고

지금은 다만 속이 쓰릴 뿐이다.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걱정이 들어맞아 안 좋은 일이 생겼더라도,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이 사람은 내 무엇도 아니고

어디서 무얼 해도,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병신이다.

웃음이 나온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어져.

그게 몇 년이 지나더라도 흐려지지가 않지.

각인 같은 거야.

머리로는 이러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바보인 거지.

여전히 자신이 그런 꼴일까봐 무서운 거고.

또 그런 꼴일까봐 좀 더 차가워지고 좀 더 차가워지고...

 

차갑게 살고 싶지만 따듯하게 살고 싶어.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행복해지고 싶어.

욕심이 많은 거지. 그러니까 힘든 거고.

나도 그걸 알아.

연애는 하고 싶은 거지, 상처는 받고 싶지 않고.

자존심 상하고 싶지도 않고, 의기양양하고 싶고.

보면 볼수록 나는 참 평범한 사람 같아.

하는 짓이 꼴사나운 것도 평범하고, 그걸 어쩌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난 달라지지 않았어.

달라지려고도 하지 않았는지 몰라.

하지만 여전히 그래.

난 바보 꼴을 하며 우는 건 질색이야.

나도, 남도.

 

그러니까 내가 행복해보이지 않다거나

그에 비해 누구누구는 행복해보이더라도 할 수 없어.

차갑게 그리고 따듯하게 살고 싶지만

어느 순간 미지근해지는 것도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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